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성경자료

[구약] 시편 톺아보기: 알파벳 시편, 기억의 선율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8-10 ㅣ No.5864

[시편 톺아보기] 알파벳 시편, 기억의 선율

 

 

기억력이 좋지 못한 사람을 금붕어에 빗대곤 합니다. 그런데 물고기의 기억력이 3초라고 해서 더이상 비웃을 일이 아닙니다.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현대인의 기억력 역시 점차 짧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 다닐 때 성경 암송 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노래했거나 외웠던 성경 말씀을 아직까지 기억한다는 것에 새삼 놀랄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암송한다는 것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럼에도 암송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도움이 되는 영적훈련이라는 반증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의 우리는 기억을 기계에 맡겨 놓고 살아갑니다. 일상생활만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에서 손쉽게 원하는 것을 모두 찾을 수 있듯이 말씀 또한 쉽게 찾을 수 있게 된 요즘 성경 말씀을 외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종이와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읽기 위한 책이 아니라 듣기 위한 책이었습니다. 문맹률이 높았던 고대시대에는 누구나 읽을 능력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들은 것을 기억해 암송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암송은 종교적 문서가 보존되고 전승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 역시 ‘기억’을 강조했습니다. 히브리어 ‘자카르’는 ‘말하다’,‘기억하다’,‘주의를 기울여 회상하다’는 뜻으로 사람의 정신적 활동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말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을 동일하게 표현하는 이유는 ‘말한다’는 것은, 곧 ‘기억한다’는 것을 전재로 하는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기억은 과거의 일을 회상하거나 상기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억함으로써 과거의 역사가 현재가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통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과거’ 구원활동을 현재에도 진행되는 역동성으로 풀어냈고 이를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곧 기억한다는 것은 구원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 속의 히브리인들은 하느님 말씀을 수월하게 기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알파벳 시편’입니다. ‘알파벳 시편’은 알파벳의 순서 A ~ Z까지를 순차적으로 사용하며 시(時)의 심미적인 기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시편의 본문 내용을 보다 잘 기억하도록 돕는 역할도 합니다. 히브리어는 22개의 알파벳으로 되어 있는데 순서에 따라 시편 각 절의 첫자로 배열하거나 22자 모두를 배열하기도 하고 때론 짧게 축약해 기록하기도 합니다.

 

시편 119편은 여덟 편의 알파벳 시편 가운데 하나로 가장 길이가 깁니다. 전체 구성은 히브리어 자음 22개를 여덟 절 단위마다 순서대로 첫머리에 배치했습니다. 곧 22개의 알파벳이 여덟 절을 단위로 배치됨으로써 총 176소절이 되는 구성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입니다.

 

작가 미상인 119편의 가장 큰 특징은 ‘하느님의 말씀’, 곧 ‘율법’을 매우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90절과 122절을 제외한 모든 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단어를 한 개 혹은 두 개씩은 꼭 넣어서 구성한 시어가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이렇게 짜여진 시편 구성은 율법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해 줍니다.

 

시편 119편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열 가지의 동의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증거’, ‘법규’, ‘규범’, ‘계명’, ‘법’, ‘말씀’, ‘길, ‘가르침’, ‘법령’, ‘규정’으로 모두 율법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저자는 알파벳 첫 글자를 활용하여 외우기 쉽고 모양으로도 아름다운 시편을 엮었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다양한 표현으로 노래하며 하느님 백성의 삶에서 토라가 차지하는 역할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토라가 지닌 하느님과 그분 말씀에 대한 마음이 어떠한지를 표현합니다. ‘즐거워하다’, ‘사랑하다’, ‘지키다’, ‘묵상하다’, ‘기뻐하다’, ‘사모하다’ 등의 다양한 표현은 하느님의 가르침, 곧 토라가 경건한 삶의 최고 이상임을 드러내는 것 뿐만 아니라 말씀에 대한 저자 자신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을 표현한 것으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시편의 이 짜임새가 보여 주듯이 저자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질서 잡힌 인간의 삶만이 안전하고 완전하다며 역설합니다. 시편 저자가 동원하고 있는 문학적 장치, 곧 A부터 Z까지의 알파벳 구조는 ‘토라’가 인간 존재의 모든 면을 망라함을 보여 주기 위한 좋은 도구입니다. 알파벳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활용하여 인간 삶의 어떠한 문제라도 토라의 영역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전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하고 신앙 추구적인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이 영원하듯이 그분의 인자하심 또한 변함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스라엘 역시 흔들림 없이 하느님만을 의지하리라는 고백을 담은 송가(領歌)가 바로 시편 119편입니다.

 

[월간빛, 2022년 8월호,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2,56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