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2일 (수)
(녹)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성경자료

[인물] 성경 속의 여인들: 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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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7-12 ㅣ No.5224

[성경 속의 여인들] 라합

 

 

약속의 땅에 비로소 다다랐다. 여호수아는 예리코로 정탐꾼을 보낸다. 들어갈 만한 땅인지, 행여 누군가 먼저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약속의 땅을 살펴본다(여호 2,1).

 

라합. 그녀는 창녀다. 예리코의 임금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자신의 고을 안으로 들어왔음을 알고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정탐꾼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주고 지켜준다. 정탐꾼들이 자신에게 왔으나 이미 떠났다며 예리코 임금이 보낸 사람들을 성 밖으로 따돌린다. 라합은 왜 그랬을까. 임금의 의도와는 달리 낯선 정탐꾼들을 왜 숨겨주고 지켜주었을까.

 

라합에겐 또 다른 힘, 또 다른 무서움이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여호 2,9). 그리고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주 당신들의 하느님만이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십니다.”(여호 2,11). 라합에겐 두 개의 권력이 있었다. 하나는 예리코 임금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것이었다. 그리고 두 권력 중 라합은 하나를 선택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자신의 목숨과 직결된 선택이었다. “그래서 내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자매, 그리고 그들에게 딸린 모든 이를 살려 주고 우리의 목숨을 죽음에서 구해 주십시오.”(여호 2,13).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을 여타의 민족들 안에서 지켜주시고 구해 주신 하느님의 업적을 들은 터였다.

 

타민족의 신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과 자신의 집안을 구한다고 생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져 피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라합은 하느님의 두려움에 자신과 자신의 집안 모두를 내어 맡겼다. 예리코의 입장에서 라합은 사회의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던 창녀였고 민족을 팔아먹은 배신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개의 민중이 그러하듯, 먹고사는 문제, 곧 제 삶의 안위는 임금이나 권력자들의 이념과 이해관계 이전의 문제다. 라합은 진정한 권력을 자신과 집안의 안위를 바탕으로 다시 고민한 것이다.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에게 가서 이렇게 말한다. “정녕 주님께서 저 땅을 모두 우리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저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여호 2,24). 정탐꾼들이 만난 건 창녀 라합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리코의 땅과 그 모든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손에 들어왔다고 해석했다. 정탐꾼이 본 것은 두려움에 떠는, 제 안위를 걱정하는 예리코 민중들이었다. 그 민중의 모습을 적확히 대변한 이가 창녀 라합이었다.

 

라합을 두고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받아들인 열린 신앙의 모델로 이해하는 해석은 뭔가 부족하다. 열린 신앙, 낯선 것에 대한 개방성… 다 좋은 이야기인데…, 그 이전에 사회적 약자인 창녀 라합을 통해 일상을 어렵게 살아 배고파 하는 민중의 애환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그런 민중을 통해, 그들의 현실적 갈망을 통해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신다.

 

라합과 그 집안은 여호수아가 예리코를 점령하고 난 후, 이스라엘의 품에 안긴다. “여호수아는 창녀 라합과 그의 아버지 집안과 그 여자에게 딸린 모든 이를 살려주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여호 6,25)

 

[2021년 7월 11일 연중 제15주일 대구주보 3면,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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