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
(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강론자료

2024-10-20.....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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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4-10-19 ㅣ No.2472

                                 민족들의 복음화(福音化)’를 위한 미사 전교주일(나해)

이사야 2,1-5       로마서 10,9-18      마태오 28,16-20

2024. 10. 20. 시월의 마지막 전() 주일(主日)

 

주제 : 내가 행동으로 참여하기.

오늘은 전교주일로 기억하는 날입니다. 전교(傳敎) 혹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할 선교(宣敎)는 내가 삶의 기준으로 삼고 실천하는 신앙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는 의미가 있는 표현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전한 복음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얼마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관한 좋은 대답이나 만족할 만한 대답이 있어야, 내가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전했다는 복음이 엉터리라고 여기지 않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제29일이지만, 해마다 민족들의 복음화 주일로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전교주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읽고 만나는 독서와 복음도 해마다 같은 내용입니다. 해마다 같은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며, 무엇을 행동으로 옮기겠다고 하겠습니까?

 

선교(宣敎)란 나의 삶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받아들였고, 내 몸에 시작된 하느님의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내가 좋은 것을 갖고 있어야 남에게 주는 것도 좋을 수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에 무슨 영향을 주겠습니까? 신앙은 우리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삶에 어떤 의미를 주겠습니까? 남들이 나에게 이렇게 물을 때, 내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나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모자라는 삶을 사는지가 구별될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신앙인으로 잘 산다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기도를 하는 시간이 많고, 교무금을 잘 내고, 다른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는 것을 말할까요? 아니면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하느님의 뜻을 잘 따라 산다고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물을 때, 나는 어떤 대답을 준비한 사람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사셨던 세상의 삶을 마치고 이별하시기 전, 올리브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특별한 부탁을 남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라고 들으면 좀 더 나을 듯합니다.

 

온 세상에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들이 하느님을 알고서 공경하게 하라는 말씀인데, 우리는 현실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부탁을 어떻게 실천하겠습니까?

 

내가 협조하는 자세에 따라, 이사야 예언서에서 들은 것처럼 시온산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가 그 축복에 참여하든지 아니면 내 의지로 거부하는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내가 싫어한다면, 하느님의 축복은 내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축복을 거부한다면, 하느님이라고 하더라도 그 축복을 우리가 받도록 강요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사람이 주장하는 생각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야 하는 일이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축복에 우리가 참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거부하는 마음을 갖지도 말아야 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려고 하시는데, 우리가 세상에서 드러내는 내 생각을 앞세워, 하느님의 축복을 거부한다면, 내 삶을 넓게 만들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바오로사도는 마음으로 믿어 삶의 축복을 준비하고, 입으로 고백하여 그 축복을 삶에 이루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만, 바오로사도가 살던 시대보다 말과 문자가 더 발달하고 내용이 많아진 지금 시대에 사는 우리는 옛날의 표현에 우리의 삶을 일체하는 일보다는 현실에서 우리는 몸으로 드러내는 행동까지도 우리가 살아야 하는 모습에 담아야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선교(宣敎)를 제대로 실천하는 방법은, 내가 믿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알리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말로만 하는 일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선교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함부로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에서 그렇게 드러내는 선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까? 행동으로 나는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를 찾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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