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
(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강론자료

2024-09-22.....한국순교자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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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4-09-22 ㅣ No.2468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대축일 [0920]

지혜서 3,1-9     로마서 8,31-39     루카 9,23-26

2024. 9. 22. (주일)

주제 : 우리가 하는 기도

오늘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200년이 넘는 시간의 이전, 복음을 받아들인 후, 삶에서 신앙을 드러내고 선포한다는 이유로 조선왕정과 사대부의 권력의 힘이 신앙을 박해하고 드러내지 못 하게 했던 일에 굴복하지 않고, 목숨을 내놓는 희생을 하면서도 신앙을 지켰던, 이 땅의 순교자들, 이 땅의 성인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강조하고 싶은 대상에 따라서 인원의 숫자를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성인으로 공경하는 분은 103위이고, 복자로 공경하는 분은 124위입니다. 그리고 성인이나 복자라는 공경의 표현은 아니지만, 신앙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세상의 소중한 목숨을 바친 신앙의 가경자(可驚者)나 증거자(證據者)는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단계에서 증거자, 가경자, 복자, 성인의 순서로 생각합니다만, 우리보다 먼저 삶을 마친 분들에게 이러한 호칭을 사용하거나 그분들을 구별하여 부르면, 그분들에게 어떤 효능이 있겠습니까?

 

1784,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북경의 북당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일을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시작된 때로 생각합니다만, 이 땅에 우리가 따르는 신앙이 세례성사로 자리를 잡은 240년쯤의 역사에서, 여러 번의 박해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지금의 우리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역사를 간직하도록 자리를 잡은 신앙의 선조들, 우리의 부모와 조상들에게 감사의 자세를 봉헌하며, 우리의 세대와 우리 다음의 시대에도 신앙의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하기를 기도하는 때입니다.

 

기도로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바꾸겠습니까? 기도를 충실히 한다면서 실천하는 사람이거나, 기도의 효험을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증거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질문이라면,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몇 년 전부터 나온 얘기입니다만, 삶의 본보기를 강조하면서 김수환 추기경님을 복자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 조선천주교회의 초대 교구장이던 부뤼기에르 주교님을 복자품에 올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삶을 마친 분들에게, 우리가 이러한 호칭을 바치면, 그분들에게 어떤 존경과 영예가 도달하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그렇게 부르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루카복음은 예수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참된 목숨을 구할 것이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영광에 참여할 것이라는 말씀하신 내용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셔야 내게 오는 은총이 실현되는 일이지만, 내가 목숨을 구하는 일은 어떤 모양일까요? 실제로 세상의 일에 성실하고 좋은 열매를 맺을 만큼 충실하게 사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광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세상의 언어로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생명은 세상의 지식으로 설명할 대상은 아니기에, 알아듣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삶에 고통은 큰 역할을 합니다. 고통의 의미나 크기를 말할 때는 내가 겪었거나 이겨낸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오늘 한국순교자를 생각하는 성인대축일에 우리는 그들이 겪은 고통을 우선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하여 그들에게 실현된 영광을 기억하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올바르겠는지 그 일을 먼저 깨닫는 일이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성인으로 공경하고, 복자와 증거자로 기억하는 과거의 신앙인들이 실제로 그들의 삶에서 겪었던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분들은 신앙인으로 살다가 만난 힘겨운 순간을 이겨냈지만, 또한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영광을 함께 노래하는 날이 오늘입니다. 이미 세상의 삶을 마친 분들이 누릴 영광을 노래한다고 해서 순교자들이나 신앙을 증거한 사람들의 삶에서 고통이 없어졌다고 우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본보기를 생각할 수 있다면, 그 모습을 내가 그대로 실천할 때 나에게도 영광과 축복이 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할 뿐입니다.

 

우리는 후대에 사는 신앙인으로서 순교자와 성인들을 대하면서 어떤 삶의 태도를 드러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드러내는 삶의 모습에 따라, 우리에게 실현될 영광도 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내 삶에 실현되게 하려면, 내가 갖추어야 할 일로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바른 생각으로 교회를 통하여 선포하는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며 살고, 내 힘으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도망치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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