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
(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강론자료

2024-09-08.....연중 제23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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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4-09-07 ㅣ No.2466

                                  연중 제23주일 (나해)

이사야 35,4-7ㄱ          야고보 2,1-5      마르코 7,31-37

2024. 9. 8.

주제 : 하느님의 선택을 대하는 자세

사람은 세상에서 저마다 자기가 똑똑하고 현명하고 살며,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판단한다는 자신감으로 삽니다. 그래서 자기만큼 판단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서,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쉽게 합니다. 세상의 삶에 나만 똑똑하고, 나만 현명하고, 나만 명석하게 산다고 말하면 얼마나 괜찮은 판단과 행동을 하겠다는 자신감으로 보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얻거나 갖고 싶은 것은 말하라면 무엇을 어떤 순서로 말하겠습니까? 삶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이 갖고 싶은 것을 표현하라면, 첫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돈일 것이고, 둘째나 셋째로는 명예나 건강에 관한 것을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바라는 것은 생각만큼 개인의 삶에 실현되는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는 마음에 큰 차이가 없을 일입니다.

 

우리가 들은, 오늘 독서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시고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세상살이에 힘겨운 사람이거나, 능력을 드러내는 일에 나보다 못하다고 여길 사람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말씀에 하느님의 뜻을 담았다고 선언한다면, 누가 그렇다고 인정하겠습니까?

 

독서에서 들은 말씀처럼, 나보다 세상살이가 힘겨운 사람들을 통하여, 나에게 실현될 하느님의 뜻이 드러난다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대하면 우리는 그 내용에 얼마나 진실이 담겼다고 인정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담으시어. 세상에 그 뜻을 선포하려는 대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마음에 들까요? 사람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부당한 모습을 지닌 그 사람들을 상대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펼치신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에 들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대하면서, 그 세상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기에 그 세상에는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 곳이라고 인정한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삶에 담으신 뜻을 얼마나 인정하겠습니까?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대하는 일에는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부탁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귀를 먹고 말을 더듬던 한 사람을 군중에서 불러내어 고치셨고, 그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지만, 그 사람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의 모습을 보았으면서도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처럼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결과는 예수님께 이익이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행동을 대하면서, 그들은 귀를 먹은 이를 듣게 하시고, 말을 하지 못하던 이들은 듣게 하셨다고 자기들의 입으로는 인정했지만, 그 소리는 복음이 선포되는 일에 얼마나 협조한 것이겠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하는 행동이 옳고 바르다고 말하면서, 차별하는 마음과 생각을 드러냅니다. 지금 당장은 그것이 옳다고 여기기에 사람이 하는 행동이겠지만, 우리가 드러내는 차별의 마음을 하느님께서 얼마나 옳고 좋은 것으로 받아주실지 잘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날씨와 절기는 가을을 향해서 들어서는 때라고 말합니다만, 이번 주간도 여전히 덥다고 합니다. 성당에 오셨을 때, 조금이라도 덥지 않게 하자고 아직은 에어컨을 켭니다만, 여름을 대충 보낸 이 늦은 시기에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드러내시는 모습을 따라서,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모습을 실천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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