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
(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강론자료

2024-06-16.....연중 제11주일 나해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4-06-15 ㅣ No.2453

                                                   연중 제11주일 (나해)

에제키엘 17,22-24      2코린토 5,6-10          마르코 4,26-34

2024. 6. 16. (주일)

주제 : 하느님이 하시는 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순리(純理)를 사람이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모른다면서 실망하는 모습보다는, 뒷날에 내가 말한 표현을 바꾸더라도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에서 쓰는 표현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사람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느님이 되고 싶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되고 싶다고 사람이 말하면, 그 사람은 하느님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대답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하느님이 어떤 대상이라고 여기는지 그 태도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이왕이면 사람이 하느님이 되고 싶어 했으니, 놀랍고 뛰어난 존재가 되면 좋겠다고 하겠지만, 사람의 생각대로 되는 일은 어디까지이겠습니까?

 

20년쯤 된 일(2004-2014년에 황우석서울대교수/파면결정)입니다만, 사람의 능력을 한껏 드러내고 싶어서, 세상에서 학자로서 발표하는 논문을 조작하여 사람의 삶을 혼란스럽게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바람이 헛된 꿈이었다고 결론이 났습니다만, 생명을 인간이 창조할 수도 있다는 연구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떤 희망을 생각하셨습니까? 아픈 사람을 알았던 제게는 마치도 하느님을 만나는 일과 같은 희망을 생각했고, 기대했던 일이었습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생명체의 씨앗을 사람에게서 빼내어 자기의 계획대로 다루면서, 내가 하는 연구하면서 다루는 생명의 씨앗은 아직은 사람이 아니기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면, 그것은 얼마나 괜찮은 소리겠습니까? 물론 학문을 연구하는 자는 사람의 씨앗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만, 신앙의 눈으로 같은 일을 바라볼 때, 그 일은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그 일에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사람으로 사느냐, 그와는 다르게 인간의 능력을 마치도 하느님의 위치만큼 높이려고 하는 사람으로 사느냐가 구별될 것입니다.

 

사람은 생명의 씨앗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가 하는 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우기고, 드러난 모습이 사람이 아니면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그렇게 논리를 말하는 사람이 자기를 한없이 높이면 무슨 영광이 사람에게 찾아오겠습니까? 오늘은 내가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대하지만 내일은 그 다른 생명체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까요? 얼마 전에 후속편으로 나온 영화입니다만, ‘혹성탈출이라는 영화에서 그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영화는 사람의 능력을 끝도 없이 높게 봐서 결국 자멸하고, 과거 사람이 누렸던 영광의 자리를 차지한 유인원의 지배와 통제를 받으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영화를 보신 분이 있다면, 거기에서 무엇을 느끼셨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선택하여 세상의 구원을 이루시려는 내용이 오늘 첫째 독서의 비유입니다. 사람을 나무에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선택을 입은 생명은 높은 산에 홀로 있어도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삶의 근거가 된다고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의 능력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그렇게 놀라운 일을 하느님의 힘을 드러낸다면,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마당에 있는, 화분에서 싹이 튼 겨자씨앗 한 알이 한 해(20235~)를 지내면서 나무의 모습을 보이고, 키도 많이 컸습니다. 우리나라의 기후에 적응할 식물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씨앗이었던, 겨자씨에 담긴 하느님의 힘은 놀랍습니다. 이 나무가 제대로 자라면, 공중의 새들도 깃들일 만큼 된다는 것이 진실일까요? 하느님께서 생명체의 씨앗에 담으신 특징을 사람이 모른다고 해도,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신실(信實)하게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그런 사실을 안다면, 사람이 얼마나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알아들을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가르침의 방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겠습니까? 사람의 생각이나 뜻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에 원하시는 뜻도 알고 실천하는 지혜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8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