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
(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강론자료

2024-06-02.....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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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4-06-01 ㅣ No.2450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나해)

탈출기 24,3-8      히브리 9,11-15      마르코 14,12-16.22-26

2024. 6. 2.

주제 : 성체와 성혈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오늘은 우리 신앙인의 삶이 하느님을 향하도록 힘을 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 다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의 의미를 특별히 생각하자는 축제일입니다. 강조해서 말하면,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잘사는 일도 예수님의 은총이고, 우리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으로 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뜻을 특별히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일은 하느님이시면서도 우리에게 선물로 오신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신앙에 관한 것을 누구나 다 알아듣도록 사람의 논리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말하는 날에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표현입니다.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표현대로, 우리가 식인종(食人種)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나 교회의 초창기 역사에서는 공동체로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는다(!)’는 일 때문에 식인종의 모임이라는 소리도 있었다고 합니다만, 요즘은 같은 표현을 써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었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다가올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시면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실 장소, 다시 말해서 파스카음식을 차리고 드실 곳을 말씀하셨습니다. ‘성안으로 물동이를 지고 가는, 이러저러한 사람을 뒤따라가서, 그 집의 주인에게 우리 선생님께서 파스카음식을 드실 장소가 어디냐고 묻고 그곳에 음식을 차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 일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이 음식을 먹는 일은 하루에도 세 번씩이나 반복하는 일이기에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경우처럼 특별하고도 놀라운 일을 계획하거나, 자기의 삶에 놀라운 일이 생길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식사라는 일에 판단이 다를 수도 있을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음식을 차리라고 한 장소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우리가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도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빠스카음식을 차리라고 한 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한자리에 모여 저녁식사를 하시고, 세상의 생명을 위한 특별한 말씀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는데, 세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장소에서 한 그 일이 사람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로 알아들었다가 지금은 본래의 의미를 우리가 기억하면서 사는 시대가 되었기에 다행입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일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는 먹고사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먹고 마신다는 일은 그저 입에 음식을 넣는 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일로서 내가 몸에 필요한 양분을 얻으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뜻을 내가 세상에서 실천하는 일까지도 포함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피를 먹는 일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그들과 맺는 계약이라고 하셨습니다. 계약이라는 낱말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알아듣겠습니까? 계약은 우리가 흔히 세상에서 사용하는 약속보다 의미가 더 크고 중요한 일입니다. 약속이라는 표현도 쉽게 생각하거나, 보잘것없는 일로 생각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과거의 시대에 계약은 자기의 목숨을 담보(擔保)와 대가로 내놓은 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계약에 따른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채무의 변제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채권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목숨이었고,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이 담보였으므로,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이었고,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일이었기에 가볍게 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계약을 이렇게 강한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은 세상에서 사용하는 의미와는 다른 신앙과 신학에서 강조하는 일입니다.

 

2500년 전,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백성이 모세가 알려주는 계명을 계약으로 들으면서 열두지파에 따라 증명이 될 12개의 돌기둥을 세우고, 번제물을 올리고, 소를 잡아 친교제물로 바치는 행동을 했습니다. 오늘 탈출기를 통해서 들은 말씀에는 계약을 지키지 않은 일에 관한 무서운 행동을 말하지는 않지만, 친교제물에서 얻은 피의 절반을 제단과 계약을 맺는 사람들에게 뿌렸다는 표현을 들은 것을 기억한다면, 계약은 내 목숨을 내놓은 나의 행동이었다는 것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무서운 것을 강조해야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약이 무서운 일이 되는 것은 올바로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나 그러한 일이고, 바르게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을 얻을 놀라운 선물이 된다는 것을 알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올바른 실천은 우리의 행실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흠숭하며, 하느님에게서 오는 완벽한 선물을 얻고 받을 훌륭한 조건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몸과 피를 선물과 생명으로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알고 대하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을 무섭고 두렵게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몸과 피를 주시는 예수님의 행동에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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