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
-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 (Mary Magdalene Postel)
같은이름 마들렌 , 막달렌 , 막딸레나 , 메리 , 미르얌 , 미리암 , 포스뗄 축일 7월 16일 신분 설립자 , 수녀원장 활동연도 1756-1846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Maria Magdalena Postel)은 1756년 11월 28일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Normandie)의 작은 어촌 마을인 바르플뢰르(Barfleur)에서 요한 포스텔(Jean Postel)과 데레사 르발루아(Therese Levallois)의 일곱 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율리아 프란치스카 가타리나 포스텔(Julie Francoise-Catherine Postel)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보다 4년이나 빠른 8살 때 첫영성체를 했다. 그 후 지방 학교를 나온 후 고향 남쪽 발로뉴(Valognes)에 있는 베네딕토 수녀회에서 교육을 받으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소망했으나 결국은 개인적인 서원만 발하였다. 바르플뢰르로 돌아온 뒤에 그녀는 1784년 18살 때 여학교를 개교했는데, 이 학교는 5년 뒤인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혁명 중에 ‘성직자 기본법’을 거부하는 성직자와 교회 인사들의 지하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녀는 집 계단 아래 성당을 마련해 사제들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도록 도왔고, 사제들의 피신과 영국으로의 탈출을 도우며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녀는 임종자들에게 노자성체를 나눠줄 허락을 받고 활동하다가 1798년 작은 형제회 제3회(Tertius Ordo Franciscanus, TOF)에 입회하여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801년 7월 15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와 나폴레옹 간의 화해를 위한 정교 협약이 체결되면서 혁명의 광풍이 잦아들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다른 동료들과 더불어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무너진 본당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혁명의 후유증이라 할 수 있는 신자들의 종교적 무관심을 치유하고 교육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여성 교우들을 모집하고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여자 수도회의 설립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셰르부르(Cherbourg)로 이사한 후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카바르(Cabart) 신부의 후원을 받아 집을 마련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1805년 그곳에 학교를 설립하고 자비의 성모님께 봉헌하였다. 그녀는 다른 세 명의 교사와 함께 1807년 51살의 나이에 카바르 신부 앞에서 수도 서원을 하고 ‘자비의 가난한 딸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셰르부르의 학교는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여성 공동체의 첫 보금자리가 되었고, 그녀는 수도회의 첫 원장이 되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수녀회 설립 초기부터 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절대로 좌절하지 않고 그 모든 어려움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극복해 나갔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농장과 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조금씩 열매를 맺어갔다. 1832년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과 동료 수녀들은 셰르부르 남쪽 쿠탕스 근처 생소뵈르르비콩트(Saint-Sauveur-le-Vicoste)에 있는 폐허가 된 옛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매입하여 수도회의 모원으로 삼았다. 1837년 로마 교황청의 요청으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그리스도교 학교 형제회에서 승인한 규칙을 수용해 수도회를 재조직하고, 수도회의 이름도 ‘자비의 그리스도인 학교 수녀회’(The Sisters of Christian Schools of Mercy)로 변경하였다. 그 후 수도회는 날로 발전하며 성장했고, 설립자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40여 년 동안 수도회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다가 1846년 7월 16일 본원에서 선종하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이 설립한 수녀회는 1859년 교황 비오 9세(Pius IX)로부터 일부 승인을 거쳐 1901년에 완전한 승인을 받았다. 그녀는 1908년 5월 17일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5년 5월 24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16일 목록에서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생소뵈르르비콩트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이 심한 박해로 사제들이 추방된 후에도 자신의 모든 재산을 병자와 신자들을 위해 내놓았고, 평화가 찾아온 후에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 자비의 딸 수도회를 설립하여 가난한 소녀들의 그리스도교 교육을 담당했다고 기록하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프랑스에서 성녀 마리 마들렌 포스텔(Marie-Madeleine Postel)로 불린다.♣
-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 (Mary Magdalene Postel)

본당소개
미사시간/찾아가는길
본당주보
굿뉴스 본당 갤러리
매일미사
가톨릭 주요기도문
성경
가톨릭성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