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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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레미지오 (Remigius)
같은이름 레미 , 레미기오 , 레미기우스 , 레미지우스 축일 1월 19일 신분 주교 활동지역 루앙(Rouen) 활동연도 +772년경
성 레미기우스(또는 레미지오)는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를 마르텔(Karl Martell)의 아들로 태어나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적법한 혼인 외의 관계에서 태어났기에 적법한 아들들에게 상속되는 아버지의 유산 중에서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했다. 그는 750/751년 이복형제이자 카롤링거 왕조의 초대 왕이 된 페팽 3세(Pepin III the Short)의 명으로 누르시아(Nursia)의 성 베네딕토(Benedictus, 7월 11일)의 성해를 몬테카시노 수도원으로 되돌려놓는 일을 맡기도 했다. 그는 755년 루앙의 대주교가 되었고, 760년에는 교황 바오로 1세(Paulus I)와 롬바르디아의 왕 데시데리우스(Desiderius)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페팽 왕에 의해 이탈리아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로마의 성가 학교인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에서 수도자들을 교육할 강사로 시메온(Simeon)을 초청해서 데려왔다. 시메온은 성 레미지오 주교를 도와 프랑스 지역에 로마 전례와 그레고리오 성가를 성공적으로 도입 · 정착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성 레미지오는 772년경 1월 19일에 선종해 루앙의 주교좌성당에 묻혔다. 그 후 그의 유해는 노르만족, 일명 바이킹의 침략 때 수아송(Soissons)의 성 메다르도(Medardus) 수도원으로 옮겼다가 1090년 루앙의 생투앙(Saint-Ouen) 수도원으로 모셨다. 그러나 1562년 위그노 전쟁(Huguenots Wars) 때 루앙을 점령한 프로테스탄트에게 약탈당해 소실되었다. 그는 프랑스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성인으로 공경을 받아왔는데, 옛 “로마 순교록”에는 그 이름이 빠져 있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전 판에 포함되지 않았던 고대 성인 중의 한 명으로 루앙의 주교 성 레미지오를 1월 19일 목록에 추가하면서 페팽 왕의 형제이자 주교인 그가 로마 전례에 맞는 시편 성가를 프랑스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기록하였다.♣
- 성 레미지오 (Remig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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