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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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차 (Michael de Aozaratza)
같은이름 마이클 , 미가엘 , 미겔 , 미구엘 , 미키 , 아오사라사 , 아오사라차 , 아오자라자 축일 9월 28일 신분 신부 , 순교자 활동지역 나가사키(Nagasaki) 활동연도 1598-1637년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Laurentius Ruiz)와 15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1633년 8월에서 1637년 9월까지 일본에서 자행된 그리스도교 박해 중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한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1587년 필리핀에 설립된 도미니코회(설교자회)의 묵주기도의 성모 마리아 선교 관구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 이들로 1981년 2월 1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0월 22일)에 의해 순교자 대부분과 인연이 있는 도시인 필리핀의 마닐라(Manila)에서 복자품에 올랐다.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로마 밖에서 거행된 시복식이었다. 16명의 순교자를 출신 국가별로 보면 일본인 9명, 에스파냐인 4명, 프랑스인 1명, 이탈리아인 1명, 필리핀인 1명이다. 신분으로 보면 9명은 도미니코회 사제, 2명은 협력자(수련자) 형제, 2명은 제3회원, 그리고 3명은 평신도였다. 도미니코회 3회원이었던 오무라(Omura)의 성녀 마리나(Marina)와 성 안토니오 곤살레스(Antonius Gonzalez) 신부를 제외한 모든 순교자는 나가사키(長崎) 해안 근처에 있는 니시자카(西坂, Nishizaka) 언덕에서 순교하였다. 이곳은 1697년에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인 성 바오로 미키(Paulus MIki, 2월 6일)와 동료 순교자 25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던 곳이며, 또한 1617년에서 1632년 사이에 순교한 205위의 복자 중 다수가 순교했던 곳이었다.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15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1987년 10월 18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들 가운데 하나인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차는 1598년 에스파냐 북부 바스크 지방의 오냐티(Onati)에서 태어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필리핀에 있는 묵주기도의 성모 마리아 선교 관구에 들어가 루손섬(Luzon Is.)의 바탄(Bataan)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1636년에 성 안토니오 곤살레스 신부가 이끄는 일본 선교단의 일원으로 합류하였다. 그들은 일본으로 비밀리에 들어갈 방법을 알아보던 중 도미니코회의 충실한 협력자로 노련한 항해사였던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가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잡히면 얼마나 참혹한 고문을 받고 처형될지 그들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가 인도하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출발했다. 그 배에는 네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오 곤살레스 · 성 빌리암 쿠르테(William Courtet) ·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차 · 일본인으로 도미니코회 사제가 된 십자가의 성 빈첸시오 시오즈카(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한센병에 걸려 필리핀으로 추방되었던 교토(Kyoto)의 성 라자로(Lazarus)가 타고 있었다. 그들이 탄 배는 마닐라를 출항한 다음 얼마 되지 않아 심한 폭풍을 만나 고생하다가 일본 남단 오키나와(Okinawa) 해변에서 난파하였다. 겨우 배가 해변에 닿자 일본 관헌들이 달려와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도미니코회 회원들을 모두 체포하였다. 그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는데, 일행 중에 수도 사제들이 있기에 더욱더 가혹한 고문이 이어졌다. 1년 넘는 감옥 생활 끝에 그들은 규슈 북서부의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도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 쇼군이 통치하던 1937년 9월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재판을 받는 동안 다양한 고문을 받았다. 물고문과 손톱 아래 날카로운 대나무나 쇠바늘을 꽂는 것 외에도 당시 가장 끔찍한 고문인 ‘아나츠루시’(Ana-tsurushi)가 자행되었다. 이는 죄인을 밧줄로 묶어 거꾸로 매달고 관자놀이에 작은 구멍을 내 머리로 쏠린 피를 조금씩 빼내며 더러운 오물로 가득한 구덩이에 몸통을 집어넣는 잔혹한 고문이었다.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차 신부는 1937년 9월 29일 39살의 나이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끔찍한 고문을 당한 후 순교했는데, 그는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엄청난 고통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9일 목록에서는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차와 성 빌리암 쿠르테와 일본인 사제인 십자가의 성 빈첸시오 시오즈카와 평신도인 교토의 성 라자로 그리고 마닐라의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가 1년 넘는 동안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다가 나가사키에서 순교했는데, 그들의 축일을 전날인 9월 28일에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개정 “로마 순교록”은 ‘일본의 16위 순교자들’이 순교한 날에 그들의 행적을 기록해 기념하도록 하고 있는데,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15명의 동료 순교자들’로서 16위 순교자 모두를 함께 기념하는 날은 9월 28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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