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
- 성 아폴로니오 (Apollonius)
같은이름 아뽈로니오 , 아뽈로니우스 , 아폴로니우스 축일 4월 21일 신분 호교론자 , 순교자 , 원로원 의원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185년
성 아폴로니우스(또는 아폴로니오)는 교회 전승과 문헌에 따르면 뛰어난 지성과 철학적 소양을 갖춘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가 그의 저서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에서 재판 기록을 전해주었고,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는 그의 저서 “저명한 인물들”(De Viris Illustribus)에서 간단한 그의 전기를 작성하였다. 성 아폴로니오는 이교 철학뿐만 아니라 성경과 그리스도교 서적을 접하면서 그 영향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당시 콤모두스 황제(180~192년 재위)는 황후가 그리스도교에 대해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 대해 다소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성 아폴로니오의 노예 중 한 명이 티기디우스 페렌니스(Tigidius Perennis) 총독에게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개적으로 고발하였다. 그 노예는 고발자란 이유로 처형당했고, 성 아폴로니오는 총독 앞으로 끌려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았다.
성 아폴로니오가 총독의 요구를 거부하자 총독은 이 사건을 원로원으로 넘겼다. 그러면서 페렌니스와 성 아폴로니오 간의 유명한 설전이 시작되었다. 성 아폴로니오는 탁월한 웅변과 저서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하고 변호하였다. 그래서 그는 호교론자, 그리스도교의 옹호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더 나은 세상,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선하게 산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탁월한 변호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페렌니스 총독마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싶었지만, 황제의 칙령에 따라 사형 선고를 내려야 한다며 가능한 한 인도적으로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는 185년 4월 21일 참수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그런데 그의 축일은 오랫동안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에 기록된 날짜인 4월 18일에 기념했었다. 그래서 옛 “로마 순교록”도 4월 18일 목록에서 성 아폴로니오가 콤모두스 황제와 페렌니스 총독 치하의 로마 원로원 의원이었고, 그의 노예 중 한 명으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당해 신앙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자 훌륭한 저서를 저술하여 원로원에서 낭독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전해 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순교한 날로 알려진 4월 21일로 축일을 옮겨 로마에서 철학자이자 순교자인 성 아폴로니오를 기념하는데, 그는 콤모두스 황제 시대에 페렌니스 총독과 원로원 앞에서 세련된 연설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했으며, 사형 선고를 받은 후에는 자신의 피로써 이를 증명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아폴로니오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 성 아폴로니오 (Apollonius)

본당소개
미사시간/찾아가는길
본당주보
굿뉴스 본당 갤러리
매일미사
가톨릭 주요기도문
성경
가톨릭성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