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6년 11월 8일 (일)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19293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19

신부님들 강론을 들을 때면 재미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하나는 눈이 제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눈이 아래로 향해 있는 것을 봅니다. 듣기는 듣는데 알아 듣지 못해서 아래로 눈이 향해 있는 것입니다. 영성의 깊이가 낮을 수록 곳곳에서 악악 소리가 나옵니다. 그만 그만 하세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으니 그만하라고요.. 그러고 다음에 나오는 행동은 성당을 냉담합니다. 왜 알아 듣지 못하겠으니? 영성은 수없이 많은 시행 착오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 가는 과정이 거칠고 힘이 듭니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듯이 수없이 많이 위협 요소들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가만히 있고 싶지만 그러나 완덕을 향하는 사람들은 늘 위협에 직면하게됩니다. 그러나 완덕을 향하는 과정 속에서 위협 요소에 빠져 들지 않은 것은 하느님과의 깊은 우정과 사랑안에 있기에 외부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해로운 것이 들어오면 그것을 바로 직감할 수 있습니다. 훈련입니다. 능동에서 수동으로 넘어가는 것도 훈련입니다. 할아버지 신부님이 매일 아침 12시 30분에 기상하셔서 늘 묵상 기도하시는데 그분도 훈련을 하십니다. 저절로 성덕에 이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덕에 같이 함께 이르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어딘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 삐걱거리가 나오는 소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고통으로 괴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완덕을 걸어가는 이는 그 과정을 성화의 여정으로 넘깁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성인이 됩니다. 내려 놓고 나를 더 바라봅니다. 늘 괴로움의 시작은 에고 입니다. 내 안에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내 안에 눈으로 외부를 바라보기에 늘 불평불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나를 바라보고 성찰과 비움.. 주님이 내안에 머무심을 청하고 그 과정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바라보면서 한발 한발 주님의 부르심에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저질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저질르는 것입니다. 저질르다는 말은 주님의 말씀대로 먼저 실행해 옮긴다는 것입니다. 내 발이 돌부리에 부딛힐 것을 두려워하면 않됩니다. 먼저 걸어가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넘어지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이클이 형성되고 그 사이클의 순환 궤적이 위로 위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과정을 속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가까이는 신부님들의 강론, 혹은 유명한 신부님들의 묵상을 매일 정독하여서 나의 어두움을 극복하는 길을 신부님들을 통해서 배우고 해쳐 나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그리고 나도 모방하여 보는 것입니다. 모방의 문턱을 넘어서면 홀로 서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홀로 서기를 통해서 나의 영적인 여정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여정을 걷는 과정 속에 죽음이 온다면 그 죽음을 맞이하고 기쁘게 죽음을 맞이 할수 있습니다. 영적인 스승을 가까이 두고 늘 같이 걸어가다 보면 그분들의 삶과 죽음을 맞이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순간 그분들이 죽음을 맞이하시는 순간 어찌 선종하시는지를 보면 참으로 하느님 안에 계셨고 죽음의 순간에도 평안이 넘어감을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여정안에 계신 신부님들을 볼때면 그 삶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종하시는 순간에도 하느님의 얼굴을 하고 편온히 넘어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죽음의 순간을 보면서 천국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여정 밖에서 서성이던 삶은 죽음의 순간에 수없이 괴로움을 느끼고 가기 싫은 표정으로 죽음의 고통 속에서 넘어감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늘 꿈꾸어 오던 이들은 하느님의 품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갑니다. 하느님과의 여정은 고통의 여정이 아니라 사랑의 여정입니다. 늘 감사와 찬미가 그의 입에는 있습니다. 늘 어린이와 같은 얼굴로 주님을 찬양하고 살아갑니다. 내어 맡김에 늘 감사와 찬미를 주시는 하느님을 늘 흠숭하며 걸어 갑니다. 깨어 있다는 말씀은 늘 여정안에서는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주님의 여정안에는 행복이 있으나 여정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과정을 모르고 살고 죽음의 순간에 괴롭게 죽고 어두움으로 넘어가기에 그 영혼을 위해서 주님이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 어디에 있는가? 늘깨어 있음에 늘 주님의 품안에서 행복의 여정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15 0

추천  0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