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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192424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10-12

김건태 신부님_십자가는 회개와 지혜의 표징

 

오늘 예수님은 ‘표징을 요구하는 세대’를 ‘악한 세대’로 평가하십니다.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 사명에 뛰어드시면서, 예수님은 말씀과 행적으로 제자들과 군중을 가르치셨으며, 그 가르침의 목적은 사람들이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그 가르침을 보증하기 위하여 그 많은 표징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표징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회개’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많은 예언자를 만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언자들은 모두 ‘참된 예언자들’이지만, ‘거짓 예언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가름할 때, 그 잣대는 ‘회개’에 대한 호소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지 못할 때, 이 백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예언자가 파견되었다는 점에서, 예언자의 설교 주제는 회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예언자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파견되어, 이방인들을 회개의 길로 이끈 요나는 예외적인 위대한 인물, ‘요나 예언자의 표징’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요나가 이 악한 세대에게 주어질 유일한 표징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이 세대가 이미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 믿음이 없는 사람들, 곧 이방인들로 전락했다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편, 역사는 외세로부터 나라를 굳건히 하기 위해 전사로 한 생을 살았던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을 지혜로 나라를 번성하게 한 인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느님께 부와 명예가 아니라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 곧 지혜를 청함으로써 지혜를 대표하는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1열왕 3,4-14). 다시 말해서, 솔로몬의 지혜는 지혜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베푸신 선물이기에, 이 선물을 잘 간직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이 전제되어야 함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요나의 표징과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지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바탕을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요나보다 더 큰 이’,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있습니다. 이방인들, 곧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끈 요나보다도, 그리고 이 이방인들이 지혜를 얻으려고 땅끝에서 찾아온 솔로몬보다도 ‘더 큰 이’가 바로 당신이심을 선언하십니다. 십자가가 소리 높이는 선언입니다! 성자께서 성부의 뜻에 따라 세상 구원을 위해서 짊어지시고 죽음을 맞이하신 십자가는, 성부께 대한 전적인 믿음의 표지이며, 모든 이의 회개와, 유다인이건 그리스인이건, 곧 믿는 이건 믿지 않는 이건 이들을 하나로 묶는 표지,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나 하느님 보시기에는 지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십자성호를 그으며 신앙인으로서의 자긍심과 함께 회개하는 삶, 다시 말해서 선과 악을 분명히 식별할 줄 아는 슬기로운 삶을 다짐하며, 힘찬 발걸음을 이어나가는,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1,29-32: 요나의 표징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29절)라고 선언하신다. 여기서 ‘악하다’는 말은 단순히 도덕적 타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고집에 사로잡힌 영적 완고함을 의미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기적을 보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것은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이다. 기적은 회개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다.”(Homilies on Matthew 43 요약) 따라서 외적인 표징만을 갈망하는 태도는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교부들은 한결같이 요나의 체험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예표로 읽었다. 성 예로니모는 “요나가 바다의 심연에서 사흘 만에 살아 나온 것은,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Commentary on Matthew 12,40)라고 해석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요나의 표징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미리 드러내는 그림자”(De Civitate Dei, 18,30)라고 한다. 요나가 니네베인들에게 회개를 선포했을 때, 이방인들이었던 그들은 말씀을 듣고 회개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그들 가운데 계신 “요나보다 더 큰 이”(32절)를 거부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역설은, 종종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멀리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비유로 남방 여왕(시바의 여왕)을 언급하신다. 그녀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했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 장면을 두고 “열린 마음을 가진 이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지혜를 찾지만, 닫힌 마음을 가진 이는 곁에 계신 지혜를 보지 못한다.”(Moralia in Job 28 요약)라고 말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여왕을 하느님의 말씀을 찾고자 하는 모든 이방인의 모형으로 보아 왔다. 이와 달리, 유다인들은 성전과 율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솔로몬보다 더 큰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교리서는 부활을 “우리 믿음의 중심 진리”(638-655항 참조), 곧 하느님의 결정적 표징으로 선포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원 역사에서 최고의 진리이자 결정적 표징이다. 십자가 죽음은 부활 없이는 무의미하고, 부활은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651항 참조) 결국 신앙생활은 기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안에서 내 삶이 변화되는지에 달려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처럼, “가장 큰 기적은 인간의 마음이 하느님께 돌아서는 것”이다.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어떤 외적 기적도 소용이 없다. 내가 회개하고 내 눈이 새롭게 열릴 때,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 은총의 표징으로 드러날 것이다. 날마다 회개와 변화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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