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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묵상

192390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10-10

김건태 신부님_물씀을 듣고 지키는이

 

오늘 복음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무엇이 우선시되는지,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밝히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과 혈연관계를 대립시키고자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둘째에 앞서 무엇이 첫째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실 따름입니다.

가르침의 대상은 “어떤 여자”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권위에 찬 말씀과 놀라운 행적 앞에서,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기를 꺼린 나머지, 에둘러 그분의 어머니를 칭송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훌륭한 아드님, 이처럼 위대한 스승님을 낳으신 어머님을 예찬함으로써 예수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이 찬미의 외침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즉각적이나, 잠시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예수님은 분명 당신을 어머니와 연결시키는 혈연관계를 부정하거나 경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참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참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일깨우고자 하는 의도만을 보여주실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만이 참 행복이며, 참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밝혀주십니다.

 

한 여인의 외침과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참 행복에 이르는 길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 복음 말씀이 주는 메시지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들어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 속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부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 가운데 대표적 또는 모범적 인물이 성모 마리아에게서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구세주 예수님을 잉태하기 전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던 분’입니다. 성모님은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하느님의 말씀’이었지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는 순명의 응답으로 구원의 새로운 역사를 활짝 여신 분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 아드님의 구원 사업,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구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함께하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어머니를 제자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로 세워주셨습니다. 주님 승천 후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그 자리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함께하셨다는 사도행전의 보도는(사도 1,14)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해 줍니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응답 속에는, 구세주를 세상에 낳으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구원 사업에 온몸으로 동참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실 성모 마리아를 예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확인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모여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에는 성모 마리아께서 늘 함께하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 신앙인의 모범이신 성모님을 본받아, 순명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신앙인,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지키는 신앙인, 성모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 속에 머물리라는 희망을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신앙인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1,27-28: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찬미하는 한 여인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27절) 이는 예수님께 대한 존경과 감탄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이렇게 응답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28절) 

 

세상의 행복은 대개 소유나 명예, 혹은 육신의 만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다른 차원에 속한다. 참된 행복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데 있다. 말씀은 하느님 생명의 씨앗이며, 그 씨앗을 마음에 품고 살아낼 때, 하느님 나라의 기쁨이 우리 안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 마리아를 부정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차원에서 마리아의 복됨을 드러내신다. 마리아께서는 단순히 예수님을 육신으로 잉태하셨기에 복된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복되신 분이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심으로써, 믿음으로 말씀을 지니셨고, 사랑으로 그 말씀을 실천하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시기 전, 먼저 마음 안에서 예수님을 잉태하셨다.”(Sermo 215,4 요약) 즉, 마리아의 참된 행복은 육신의 모성보다 믿음과 말씀의 순종 안에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단발적인 체험이 아니라, 삶 전체에 걸쳐 이어지는 여정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할 때마다, 이미 지금, 이 순간 구원을 맛보게 된다. 구원은 종말에 완성되지만, 그 씨앗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 싹트고 자라난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감동이 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나는 말씀을 단순히 듣는 데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을 삶의 구체적 자리에서 실천하고 있는가? 

 

성모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매일 말씀을 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참된 행복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한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이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 세상에 예수님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28절) 오늘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세상 그 어떤 행복보다 더 깊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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