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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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53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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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우리는 사칙연산을 배웠습니다.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산수의 기본입니다. 중학교에 가면 방정식을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는 함수와 미분, 적분, 행렬을 배웁니다. 수학에도 이렇게 단계가 있습니다. 저의 수학 실력은 방정식에서 거의 멈추었지만, 세상은 계속 발전했습니다. 주판이 계산기를 만나고, 계산기가 컴퓨터를 만나고, 이제 컴퓨터는 인공지능을 만났습니다. 인공지능은 복잡한 계산을 하고, 책을 요약하고, 길을 안내하고, 성경에 관한 질문에도 답합니다. 인간의 지식과 기술은 이렇게 한 단계씩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인간이 저절로 더 지혜롭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에는 단계가 있지만, 삶에도 그에 맞는 성숙의 단계가 필요합니다.
인류의 문화와 문명에도 단계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양심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질서와 규범이 필요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생겼고, 우리 조상들은 홍익인간과 삼강오륜과 같은 가치를 통해 공동체의 질서를 세웠습니다. 신앙의 역사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계명은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세워 놓은 이정표와 같습니다. 양심에서 사회의 규범으로, 사회의 규범에서 하느님의 계명으로 인간은 한 단계씩 더 깊은 삶의 질서를 배워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준다면, 사랑은 ‘해야 할 것’을 보여 줍니다. 계명이 선을 지키도록 우리를 인도한다면, 사랑은 기꺼이 자신을 내주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고,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많은 열매를 맺듯이, 사랑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집을 깨끗하게 정돈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깨끗한 집도 오랫동안 돌보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흐트러집니다. 텃밭도 한 해만 손을 놓으면 잡초가 무성해집니다. 우리의 영혼도 그렇습니다. 한때 열심히 기도했고, 한때 좋은 결심을 했으며, 한때 봉사를 많이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하셨습니다. 가지는 계속 나무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양은 계속 목자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과거의 경력이 아니라 오늘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가장 높은 단계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찾아와도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기쁘고 좋은 일이 찾아와도 그것을 내 능력으로만 여기지 않고 감사와 겸손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악한 세력은 고통을 통해 우리를 흔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성공과 풍요를 통해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성공 속에서도 교만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끕니다.
수학에도 단계가 있고, 인간의 문화와 문명에도 단계가 있으며, 우리의 신앙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양심이 필요하고, 규범이 필요하며, 계명과 율법도 필요합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끝까지 살아가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는 힘이 바로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믿고, 이해되지 않아도 맡기며, 힘들어도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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