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승수 신부님 [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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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01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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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루카 10,25-37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렇게 묻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는 사실 자기가 던진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지요. 그가 평생 동안 열심히 공부해온 율법에 하느님께 구원받고 싶으면 마음과 목숨과 힘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정답’이 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아는 그 정답을 예수님도 알고 있는지, 그분이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스승’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해보려고 한 겁니다. 자기 능력과 지위가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자기보다 못한 이를 평가하려고 드는 아주 교만한 모습이지요.
그런 그의 교만함은 구원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 뜻에 맞는 무엇인가를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즉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으로 구원이라는 대가를 쟁취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의 행위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비에 달린 일입니다. 하느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그는 그분의 은총과 자비가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부족하고 약한 존재일 뿐이지요. ‘구원’도 ‘영원한 생명’도 다 하느님이 허락하셔야 비로소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니,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존재’의 문제에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시고 나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비유 속 사마리아인이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가엾이 여기며 그에게 최선을 다해 자비를 베푼 것처럼,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먼저 다가가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그의 ‘이웃’이 되어주라는 것입니다. ‘누가 나의 이웃이 될 수 있는지’, 즉 누가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따져가며 수동적으로, 조건부로 선행을 실천하는 건 참된 자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자비가 나에게 주는 유익을 제대로 누릴 수가 없지요.
세상 사람들은 내가 먼저 희생하고 배려하며 양보하면 손해를 본다고 여겨 자비를 베풀기를 주저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최소한의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자비를 실천하려고 하지요. 그러나 자비를 베푸는 사람과 그 자비를 입은 사람 모두에게는 ‘구원’과 ‘참된 행복’이라는 선물이 주어집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건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이 나를 통해 다른 이에게 전달되게 하는, 다시 말해 ‘은총의 통로’가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콩을 물에 담가 놓으면 썩지만 흘려보내면 콩나물이 되는 것처럼,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내 안에 가둬 놓으면 몸과 영혼이 탐욕으로 병들지만 이웃에게 잘 흘려보내면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법입니다. 이 ‘구원의 진리’를 마음 깊이 새기고 적극적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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