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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192237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6:02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보았습니다. ‘오디세이’는 본래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긴 귀향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오디세이는 단순한 모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디세이는 인간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구나.’ 호메로스의 세계에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낯선 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신이 나그네의 모습으로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문명이란 높은 건물을 세우고, 좋은 무기를 만들고, 많은 재물을 가진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나그네를 환대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문명입니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에는 이러한 질서가 무너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짓밟고, 낯선 이를 경계하며,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습니다.

 

3천 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과학은 발전하였고,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으며 인간은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난민과 이주민을 향한 적대감도 있습니다. 힘이 정의를 대신하고, 이익이 생명보다 앞서는 모습도 있습니다. 문명의 도구는 발전했지만, 우리의 마음도 그만큼 문명화되었는가 오디세이는 오늘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 제1 독서의 욥에게도 하나의 ‘오디세이’가 있었습니다. 욥의 여행은 바다를 건너고 괴물을 만나는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을 잃고, 하느님마저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하느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하느님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긴 고통의 오디세이 끝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욥의 오디세이의 목적지는 재산의 회복이 아니었습니다. 건강의 회복도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을 지나면서 욥은 하느님에 대해서 아는 사람에서, 하느님을 만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오디세이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또 하나의 오디세이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오디세이입니다. 예수님의 여정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여정입니다. 병든 이를 고쳐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며, 가난한 이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외로운 이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돌아와서 기뻐하며 말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예수님의 오디세이는 성공과 권력을 향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명성을 향한 여행도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향한 여행이었고, 십자가를 지나 부활과 하느님 나라로 가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오디세이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세상은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경쟁에서 이겨야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말합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새로운 문명은 새로운 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더 빠른 컴퓨터, 더 강한 무기, 더 많은 재산이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그네를 환대하고, 약한 이를 보호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사람이 새로운 문명을 만듭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의 오디세이입니다. 때로는 욥처럼 고통의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때로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고향을 알고 있다면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욥의 오디세이는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오디세이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오디세이는 사랑으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는 길이여야 합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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