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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19220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9-30

김건태 신부님_부르심과 따름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유형의 부르심과 따름의 현장을 목격합니다. 첫 번째 유형은 두려운 감정이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예수님께 나서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는 유형입니다. 모든 면에서 자신이 있는 사람,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분명, 이 사람의 열정은 나무할 데 없이 진지해 보이고, 믿음 역시 모자란 구석이 없이 완벽해 보이며, 나섬 또한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는 순수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의 모습에 별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말씀, 곧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하는 말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자발적인 따름이라 하더라도, 따름에는 안전이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삶,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삶, 가난과 시기와 모욕으로 얼룩진 처절한 삶 등을 미리 각오해야 함을 일러주십니다. 열정이 이러한 삶까지 담을 수 있기를 바라시는 기대가 돋보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따라라.” 하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이 하달되는 유형입니다. 그러나 망설임이 이 부르심을 난처하게 만듭니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반응은 즉각적입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 버려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당신이 제안하는 삶, 곧 세속적 가치를 뛰어넘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르침, 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범한 삶에서 죽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가르침, 세속적인 모든 가치를 포기해야 하는 삶이 요구된다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세 번째 유형은 자발적으로 나서기는 하나, 조건을 내세우는 유형입니다. 어떻게 보면, 첫째 유형과 둘째 유형이 부정적으로 혼합된 유형으로 보입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규정되는 유형입니다. 쟁기에 손을 댔으면, 논이나 밭이 제대로 갈아엎어지도록,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이 앞만 주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하기로 다짐했다면, 과거에 집착하는 삶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의 부르심에 진솔하게 대답한 사람, 그런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 오늘 말씀, 오늘 예수님의 부르심에 견주어 점검해 보아야겠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로, 상대적으로 선한 신앙인이라는 자평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결심했고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늘 점검하고 다스려 나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다운 말과 행동으로 다가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나가는, 신앙인다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 예수님을 따르려면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려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의지와 열정 속에 숨어 있는 조건과 망설임을 드러내시며, 제자가 된다는 것은 곧 무조건적인 결단임을 가르치신다. 첫 번째 사람은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57절)라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58절)라고 답하신다. 이는 제자의 길이 안락이나 보장을 찾는 길이 아니라, 십자가에 이르는 길임을 밝히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자는 그분과 함께 고난을 나누지 않고서는, 그분과 함께 영광을 나눌 수 없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84,2 요약) 

 

두 번째 사람은 아버지의 장례라는 당연히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하고자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60절)라고 하신다. 이는 가족의 의무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복음 선포의 절박성과 우선성을 드러내신 것이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부르심 앞에서 다른 어떤 것도 더 우선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세 번째 사람은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주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62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롯의 아내를 떠올리게 한다(루카 17,32). 제자의 길은 뒤 돌아봄 없는 전진의 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권고한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비록 넘어지고 쓰러질지라도, 다시 일어나 앞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Homiliae in Matthaeum 재구성) 

 

오늘 복음은 우리 삶에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주님을 따르려 하면서도 여전히 조건을 달고 있지는 않은가? 편안함, 가족 관계, 재물이나 체면이 나를 붙잡아 뒤돌아보게 만들지는 않는가? 신앙생활은 늘 ‘나중에 하겠다.’라는 유혹과 싸우는 길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부르심은 “지금, 여기서”라고 응답해야 하는 초대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안락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은 거처 없는 나그네셨고, 십자가를 머리 둘 곳으로 삼으셨다. 그분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쉽지 않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걷는 길이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은총을 청하자. 뒤돌아보지 않는 믿음의 용기, 망설임 없는 결단 지금, 이 순간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신앙을 달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 삶이 점점 더 주님의 제자다운 삶, 즉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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