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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6년 9월 20일 (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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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192012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18:33

포트워스 신부님과 함께 산타페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여행 경비는 약 600달러 정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행 경비보다 훨씬 많은 돈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 들었습니다. 산타페로 갈 때 한 번, 달라스로 돌아올 때 한 번, 두 번이나 교통법규 위반 티켓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함께 여행하다가 생긴 일이니, 범칙금의 절반을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주 뒤 신부님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범칙금의 절반을 내준다고 해서 고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범칙금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여행 경비보다도 많았습니다. 저는 약속대로 범칙금의 절반을 보내 드렸습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었으니, 고통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제가 티켓을 받았을 때 신부님이 내가 절반을 내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저 역시 참 고마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누가 네 속옷을 달라고 하거든 겉옷까지 내주어라.” 신앙은 좋은 말을 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신앙은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지는 것입니다. 기쁨뿐 아니라 고통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은 마음속의 아름다운 감정이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약속을 지키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오늘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의 축일입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세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 제국을 위해 세금을 거두었기에 동족들에게 죄인과 배신자처럼 여겨졌습니다. 사람들은 마태오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마태오는 그 말씀을 듣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의 과거를 먼저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는지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마태오에게서 죄인을 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서 사도를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세리를 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복음사가를 보셨습니다. 마태오는 돈을 계산하던 손으로 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세금을 기록하던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던 사람이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신비이고 회개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마태오 복음사가의 글을 통해 예수님의 생애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아기 예수님을 찾아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성가정이 이집트로 피난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장면들은 수많은 성화와 음악과 문학의 소재가 되었고, 지금도 우리 신앙의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태오 복음의 산상 설교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세상은 많이 가진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 깨끗한 마음, 평화를 이루는 삶이 참된 행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우리는 내일을 걱정하고, 건강을 걱정하고, 자녀를 걱정하고,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새를 바라보고 들의 꽃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알고 계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저 역시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깊은 위로를 얻습니다. 걱정의 무게를 내려놓고, 더 높이 날아오르는 갈매기의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하느님 나라의 비유도 참 아름답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단순히 죽은 다음에 가는 시간과 공간의 장소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미움이 용서로 바뀌는 곳에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욕심이 나눔으로 바뀌는 곳에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무관심이 연민으로 바뀌는 곳에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들어 주는 곳에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오는 바로 그 말씀의 증인이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위로받고, 죄인이 용서받으며, 넘어진 사람이 다시 일어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아픈 사람을 찾아가며,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짐을 함께 들어 주는 것이 곧 예수님께 해 드리는 일입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사람은 목자와 교사로 세워 주십니다. 역할은 서로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성장시키고,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 마태오 사도는 세관을 떠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하여 2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주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나를 따라라.”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글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기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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