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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9월 15일 (화)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부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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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191891 박양석 [pys2848] 스크랩 2026-09-14

2026년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올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초등부 복사들이 미사 전에 저를 급하게 찾는 것입니다. 복사방에 커다란 벌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너희가 잡아.”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깜짝 놀라면서 “아니! 그렇게 큰 벌을 저희가 어떻게 잡아요? 또 벌에 쏘이면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이들에 끌려서 어쩔 수 없이 복사방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힘들게 벌을 잡았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 벌에 쏘여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 큰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직접 잡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들 앞에서 강한 척 보이려고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저 혼자 있었다면 도망쳤을 것입니다.

 

사랑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있을 때, 용기를 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힘은 그 어떤 것보다도 크고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큰 사랑으로 우리 모두의 구원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 기념일에 성모님을 묵상하게 됩니다.

 

보통 자녀의 고통 옆에 보통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절망하여 쓰러집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서 있었다.”(요한 19,25)라고 복음은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성전 봉헌 때 들었던 시메온 예언자의 “당신의 영혼이 칼에 찔릴 것입니다.”(루카 2,35)의 예언이 이루어진 순간이고,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고 말씀하시면서, 교회와 성모님을 깊은 관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교회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죽음의 그 순간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십니다(요한 19,27). 이는 단순히 혼자 되신 성모님을 보살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보다 자신의 영적 삶의 중심이자 가장 본질적인 영역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순종을 배우고, 사랑하는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모님과 함께하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있게 되고, 그 안에서 커다란 힘을 얻게 됩니다.

 

성모님도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쓰러지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 서 계십니다. 우리 역시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성모님과 함께 서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죽음에 있어 영광스러울 것은 전혀 없다. 모두가 죽을 수 있다(자니 로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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