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홍) 2026년 9월 14일 (월)성 십자가 현양 축일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슬로우 묵상] 바라보면 삽니다_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준비하며

191872 서하 [nansimba] 스크랩 2026-09-13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민수기 21,4-9 / 요한 3,13-17

"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 3,17)

 

 

바라보면 삽니다

살다 보면 도저히 마주 보기 싫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픈 몸, 깨진 관계, 지난날의 실수, 감당하기 힘든 상처. 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눈을 돌립니다. 안 보면 없는 것 같고, 잊으면 사라지는 것 같으니까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렸을 때, 그들이 가장 하고 싶었던 건 그 뱀을, 그 상처를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는 것이었을 겁니다.


도망치지 말고, 매달아 놓으라

그런데 하느님은 뜻밖의 처방을 내리십니다. "뱀을 없애 주겠다"가 아니라,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라"였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물린 사람이 그 뱀을 "바라보면" 살 것이라고.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프게 한 바로 그것을, 피하고 싶은 바로 그 대상을 오히려 눈을 들어 똑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비슷합니다. 잊으려고 애쓸수록 더 아프고, 외면할수록 더 깊이 곪습니다. 반대로 "그래, 나 이거 아팠어" 하고 인정하고 바라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치유의 시작입니다.

 

십자가, 가장 낮은 자리에 매달린 사랑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그 광야의 뱀에 빗대십니다. 가장 낮고, 가장 부끄럽고,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십자가.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실패, 처형, 저주의 상징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느님은 바로 그 자리에 당신의 사랑을 매달아 놓으셨습니다. "이걸 보아라. 도망가지 말고, 여기를 보아라. 너희가 가장 피하고 싶은 그 자리에 내가 있다."


십자가는 벌이 아니라 사랑의 증거

 

우리는 가끔 고통을 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나" 하고요.

하지만 오늘 복음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주셨으니,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십자가는 심판의 도구가 아니라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벌하러 오신 게 아니라, 우리 곁에 함께 있으려고 가장 아픈 자리까지 내려오신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보는 것은 '벌'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내가 바라보아야 할 것


우리 각자에게도 눈 돌리고 싶은 '나만의 뱀'이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실수, 인정하기 싫은 나약함, 잊고 싶은 상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초대합니다. 그것을 없애려고 발버둥 치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그리고 그 곁에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함께 계심을 바라보라고.

바라본다고 상처가 당장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살기 시작합니다.


바라보면 삽니다.



2 19 0

추천  2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