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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십자가 현양 축일

191862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7:30

얼마 전 기도를 부탁하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한 자매님은 남편의 사업을 도우며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가정을 돌보고 자녀를 키우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습니다. 이제 예순이 넘어 사업을 정리하면서 평소 꿈꾸었던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본당 성가대에서 봉사했고 음악과 춤에 관심이 많았던 자매님은 하와이의 전통춤인 훌라 댄스 교습소를 열었습니다. 음악과 춤으로 이웃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동안은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자매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새로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동창 신부님이 인터넷에서 읽었다며 이런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팔순이 될 무렵이면 사람들은 자꾸 뒤를 돌아보라고 한다. ‘이제는 쉬셔야지요. 무리하지 마세요. 건강만 챙기세요.’ 말은 고맙다. 그러나 인생을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에게 이제 와서 겨우 쉬는 일만 하라고 하면, 그것은 팔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팔순은 인생의 폐점 시간이 아니라, 오래 묵은 술이 제맛을 내기 시작하는 때다.” 참 인상적인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어 주신 곳에 우리가 함부로 마침표를 찍을 필요는 없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구에게나 해야 할 일이 있고,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사랑이 있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오늘은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십자가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통과 시련의 십자가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랑을 위한 헌신과 희생의 십자가입니다. 먼저 십자가는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고통과 시련을 의미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고, 비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우리 인생에도 고통과 시련은 손님처럼 찾아옵니다. 병으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다. 척추 협착증과 폐암으로 수술을 받는 형제님이 있습니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준비하는 자매님도 있습니다. 자가 면역 질환 때문에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던 학생도 있습니다. 질병의 십자가는 환자 혼자만의 고통이 아닙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함께 아파하고, 함께 걱정하고,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마음의 고통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미운 사람과 계속 만나야 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이 있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미움과 원망으로 공황 장애를 겪는 사람도 있고, 오해와 시기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속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통의 이유를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라고 질문해도 쉽게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원래 고통과 수치와 형벌의 도구였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가장 비참한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십자가의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형벌의 도구가 구원의 표징이 되었고, 죽음의 나무가 생명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수치의 자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실패의 표징이 아니라 부활로 건너가는 문입니다. 미사 중에 사제는 성찬의 정점에서 선포합니다. “신앙의 신비여!” 그러면 우리는 응답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며 부활을 굳게 믿나이다.”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 받으소서.” 우리 신앙의 중심에는 언제나 십자가와 부활이 함께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을 바라는 것은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를 얻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을 기대하는 것은 사막의 신기루를 좇는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의 모양을 바라보면 두 개의 선이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직선은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과 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수평선은 사람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용서하고, 나누고, 섬기며 이웃과 하나가 됩니다. 수직선만 있고 수평선이 없다면 그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수평선만 있고 수직선이 없어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사람을 위한 봉사도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이루어질 때 더욱 깊은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시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시는 문이 되셨습니다. 오늘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피하고 싶은 병일 수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책임일 수도 있고,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무게만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순이 넘어 새로운 꿈을 시작한 자매님처럼, 우리도 고통 속에 마침표를 찍기보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새로운 쉼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인생이 끝났다는 표시가 아닙니다. 사랑을 시작하라는 초대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표시가 아닙니다.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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