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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묵상시] 상흔(傷痕)의 은총

191756 윤홍선 [hsyoonrda] 스크랩 2026-09-08

상흔(傷痕)의 은총

 

윤홍선

 

영혼의 날씨에 짙은 먹구름이 덮이고

세상의 모든 어둠이

겹겹이 밀려오던 날이 있었다.

 

깊은 웅덩이 바닥에 몸을 누이고

홀로 어둠을 삼키던 침묵의 밤,

타인의 눈물까지 감싸 안기에는

내 영혼의 품이 너무나 서러웠다.

 

계절이 고요 속에서 깊어가고

상처마다 단단한 흉터의 미소가

조용히 자리를 잡을 무렵,

 

벌어진 흉터는 은총의 틈새가 되고

따스한 숨결 하나가

말없이 스며들었다.

 

그제야

눈물 마른 눈동자에

건너편 슬픔의 얼굴이 보였다.

 

아무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말하지 못한 채

괜찮은 얼굴 하나씩을 가만히 걸어 두고,

오늘이라는 깊고 아득한 외로움을

눈물로 견디는 사람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지나온 그 캄캄한 안개는

나 하나만을 가두기 위한

어둠이 아니었음을.

 

내가 흘린 눈물과 지새운 밤들이

어느 이름 모를 이의 새벽을 안아줄

따뜻한 볕으로 익어가고 있었음을.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나를 무너뜨린 파편이라 부르지 말라.

세월을 견뎌낸 상흔(傷痕)은

타인의 쓸쓸한 슬픔을 오래 바라보게 해주는

따뜻한 성소의 창이 되나니.

 

아, 치유란

아픈 흔적을 깨끗이 지워내는 일이 아니다.

 

상흔의 자리마다

맑고 단단한 싹 하나씩을

가만히 틔우는 일이다.

 

서로의 외로운 섬과 섬 사이에

서로의 외로움으로 건너갈

작은 징검다리 하나를

조용히 놓아주는 일이다.

 

내가 먼저 받았던

그 은밀하고 아늑한 숨결 하나를

시린 손을 가진 이웃에게

가만히 건네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외로움은 고통의 기억을 넘어

사랑이라는

거룩한 현재가 된다.

 

울지 마라.

아픔은 삶의 마지막 문장이 아니다.

 

오래 숙성된 상처는

가을 햇살 아래 반짝이는 윤슬처럼

누군가의 어두운 밤을 다정히 밝히는

새벽의 빛이 되고,

 

다시 오늘을 살아갈

작은 숨 하나가 되어

 

깊어진 계절의 끝에서

조용히 다시 피어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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