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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191754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13:03

휴가 중에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맺어 온 소중한 인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후배 신부님들을 만났습니다. 16년 전, 30일 피정을 함께했던 신부님들입니다. 당시에는 제가 선배라고 점심을 자주 사 주었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점심을 사려고 했는데, 후배 신부님들이 한사코 말렸습니다. “신부님께서 예전에 많이 사 주셨으니, 이제는 저희가 사겠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함께 기도하고, 함께 웃고, 서로를 격려했던 인연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베풀었다고 생각했던 작은 마음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감사와 사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네는 따뜻한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40년 넘게 복음화 학교를 위해 헌신하신 선생님도 만났습니다. 이제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지내셔도 될 나이입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맡았던 자리를 후임 선생님에게 기쁘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일을 끝내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곳에 또 다른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아직 복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영적인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바오로 사도가 생각났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세운 공동체를 믿음직한 후임자에게 맡기고, 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났습니다. 편안함보다는 복음이 필요한 곳을 선택했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었지만, 마음과 열정은 여전히 청년 같았습니다. 사람의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가슴이 뛰는가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 넘게 본당 사목회장을 맡아 헌신하셨던 형제님도 만났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본당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능력을 봉헌하였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수고도 많았고, 마음 아픈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님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 모습에서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분들을 만나면서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돌려주는 사람, 자신의 자리를 기쁘게 후임자에게 내어주는 사람, 새로운 복음의 밭을 찾아 떠나는 사람, 한결같이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고백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사람만이 희망인 것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직접 빵을 내려 주시기보다 빵을 나누는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슬픔을 단번에 없애 주시기보다 곁에서 함께 울어 주는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길을 잃었을 때 하늘에서 큰 표지판을 내려 주시기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길을 알려 주는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돌아보면 저의 삶에도 희망이 되어 준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부모님과 가족이 있었고, 신학교의 동료들이 있었으며, 함께 사목했던 사제들과 교우들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사람을 통하여 저를 위로하셨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셨습니다. 신학생 때는 사제가 되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보좌신부 때는 본당신부가 되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본당신부가 되고 나서는 보좌신부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작은 본당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큰 성당으로 가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내가 원하는 조건이 채워질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하는 자리를 얻어도 또 다른 바람이 생겼고, 부족한 것이 채워져도 새로운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행복을 미래의 어느 날로 미루어 두면 우리는 오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행복은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충실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행복도 특별한 조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하느님 나라라면,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시선을 위에 있는 것에 두라고 권고합니다. 이것은 현실을 외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마음은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욕심과 욕망, 출세와 성공, 권력과 명예가 행복을 보장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불꽃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자신과 이웃을 태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그 끝에는 허무만 남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말하는 행복과 전혀 다른 행복을 선포하십니다. 가난한 사람, 지금 굶주리는 사람, 지금 우는 사람,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배척받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과 굶주림과 눈물 자체가 좋은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과 같습니다. 시련과 절망,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사라지지 않는 행복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행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관계의 깊이에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얼마나 감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가보다 그 자리에서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가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 주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행은 불평의 문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작은 것에서도 은총을 발견합니다. 아침에 눈을 뜬 것, 함께 식사할 사람이 있는 것, 전화해서 안부를 물을 사람이 있는 것,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도 은총입니다. 거창한 일을 해야만 희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외로운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주는 것, 지친 사람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들어 주는 것, 후배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돌려주는 것, 공동체를 위해 맡은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희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빛을 받아 살아갈 때, 우리도 누군가의 어둠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친절을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사랑을 통하여 누군가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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