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토 1서 1,1-9 / 마태오 24,42-51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마태오 24,46
기다림 자체가 존재의 자리
깨어 있으라는 말은 "지금을 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복음에서 나쁜 종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인이 늦게 오시겠지." 그러고는 마음대로 삽니다.
그가 잘못한 건 시간을 잘못 계산한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소홀히 한 것이 문제입니다.
깨어 있다는 건 미래를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성실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부족함 없는 사람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다리는 건 뭔가 모자란 걸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받은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실하신 하느님시기에
"여러분을 불러 주신 하느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느님이 먼저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은총은 이미 우리 안에
은총은 멀리서 나중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을 해내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은 벌 받을까 두려워 조마조마한 시간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약속하신 것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희망의 시간입니다.
기다림 그 자체를 살아낸 사람, 모니카
모니카 성녀는 아들 아우구스티노가 돌아오기를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결과를 보지 못한 채 흘러간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간을 그냥 버틴 게 아닙니다. 기다림 자체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삼았습니다.
기다림은 빈 시간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이미 존재의 자리입니다.
모니카처럼, 우리도 오늘을 깨어 살 수 있기를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