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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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57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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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23,3ㄴ)
'겸손한 사람이 되자!'
오늘 복음(마태23,1-12)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23,2-3)
복음 안에서 보면 예수님의 가장 큰 분노는 '위선'입니다.
죄인의 모습이 아니라 위선의 모습을 크게 질책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복음이 오늘부터 듣게 되는 '마태오복음 23장 1절에서 36절'의 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에게는 참으로 관대하셨습니다.
그리고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15,11-32)에서처럼 돌아오는 죄인들을 조건없이 기쁘게 품어 안아 주셨습니다.
위선은 겉으로만 착한 척 하는 것입니다.
위선은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위선은 자기 성소에 맞지 않는 모습,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위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위선, 높은 자리를 탐내는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위선을 멀리하라고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23,12)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은 성모 승천의 영광을 거듭 확인하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는 겸손의 어머니이셨습니다. 주님의 어머니로 간택되신 이후 끝까지 한생을 예수님의 뒤를 철저하게 따라가신 겸손의 모후이셨습니다. 그래서 성모승천의 영예를 누리셨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전구자가 되셨습니다.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 됩시다!
겸손은 성모님처럼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겸손은 성모님처럼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를 저희 어머니요 모후로 모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분의 전구로 보호를 받아,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 자녀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본기도)
(~ 예레21,14)
조욱현 신부님_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다.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순된 삶을 드러내신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가르치지만, 스스로는 그 말씀을 살지 않는다. 그들의 말은 무겁지만, 그들의 삶은 가볍다. 그들은 율법을 외적 장식물(성구갑, 옷자락 술)로 만들고, 사람들의 존경과 인사를 탐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겸손과 사랑의 실천은 잃어버렸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스승이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스승의 행동이 그 말씀과 다르다면,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따르지 말고 그들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만 따라야 한다.”(Sermones 요약) 이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해설하며 겉꾸밈의 죄를 엄중히 경고한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추구했다. 그들의 기도, 단식, 옷차림은 모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앙의 참된 표지는 드러남이 아니라, 은밀함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앞의 진실성이다.”(Hom. in Matthaeum 참조) 하느님 앞에서 드러나지 않는 행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기도하고 봉사할 때, 누군가의 눈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결론은 단호하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2절) 성 그레고리오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한다. “겸손은 미덕의 어머니이다. 겸손 없이는 그 어떤 선행도 하늘 나라에 오르지 못한다. 겸손은 봉사로 드러나며, 봉사는 사랑에서 비롯된다.”(Homiliae in Evangelia, 참조) 교리서에서도 ‘끝자리’는 단순한 자리 배치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십자가의 자리, 곧 봉사와 헌신의 상징이었다.(2540-2547, 786항 참조)
오늘 복음은 신앙을 외적 치레로 만들려는 유혹을 경계한다. 하느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교회의 권위와 가르침도 그 뿌리가 봉사 안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10절)라는 말씀은, 신앙인의 권위가 자기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제 우리의 참된 장식은 외적인 표지가 아니라, 사랑으로 드러나는 내적인 은총이어야 한다.
오늘 복음은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 참된 제자의 표지임을 강조한다. 외적 영광을 좇는 바리사이적 태도를 벗고, 예수님처럼 낮아져 끝자리에 앉는 용기가 있을 때, 우리는 하늘 나라에서 참으로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율법학자와 바리 사이들
오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 23장의 서언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예수님은 유다교 지도자들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대상으로 비난의 말씀들, 나아가 저주의 말씀들을 쏟아내십니다. 아마도 복음 저자 마태오는 자신이 속해 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유다교와 논쟁을 벌이는 데에 유용한 예수님의 말씀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로 소개합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라는 사실은 이스라엘 최고의 입법자인 모세의 합법적인 후계자이며 해설자임을 의미하며, 따라서 예수님은 분명 이들의 존재와 권위만큼은 인정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기능 자체를 문제시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문제는 행실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무엇보다도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일수록 언행(言行)과 지행(知行)이 일치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질책하십니다. 나아가 이들을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로 질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하는 확언과 함께, 그 구체적인 행태를 나열하십니다. 먼저, ‘성구갑’과 ‘옷자락 술’이 언급됩니다. ‘성구갑’은 율법의 핵심이 되는 성경 구절을(탈출 13,1-10; 13,11-16; 신명 6,4-9; 11,13-21 등) 적은 양피지를 넣은 조그마한 가죽 상자로서, 유다인들은 늘 또는 기도할 때 이것을 이마와 왼쪽 팔 위에 매달았습니다. ‘옷자락 술’은 하늘을 상징하는 자줏빛 실 한 가닥을 끼어 짠 장식으로서 하느님의 계명을 상기시키는 구실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남들의 눈에 잘 보이도록 그것들을 넓게 또는 길게 만들어 달고 다녔던 것입니다. 잔칫집에서는 집주인의 바로 옆자리로서 하객들 가운데 주요 인물을 위해 마련된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종교적 권위의 상징이었던 ‘높은 자리’를 선호하거나 탐했으며, 공적인 공간을 가리켰던 ‘장터’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인사받기’를 기대했습니다. 이들은 또한 ‘스승’, ‘아버지’, ‘선생’으로 불리기를 즐겼으나, 이 호칭들 역시 거부의 대상이 됩니다. 문맥상 ‘스승’과 ‘선생’은 현재 활동 중인 교사를, 그리고 ‘아버지’는 과거에 특히 존경받던 교사를 가리켰던 표현으로 보입니다.
유다교 지도자들의 이러한 행태에 대한 비난의 근거는 “너희는 모두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너희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는 큰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벌써, 예수님은 유다교 지도자들을 넘어, 당신이 세우실 교회의 지도자들, 사도들을 포함한 모든 지도자가 늘 가슴에 담고 실천에 옮겨야 할 기본 지침을 선포하고 계심을 목격합니다(다음 주간 월~수요일에 읽고 묵상할, 이어지는 ‘불행 신탁’[23,13-32]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 언행과 지행일치로 신앙생활에 권위를 갖추며, 본당 활동에서 하는 일이 다르고 불리는 호칭이 다르더라도 우리 모두 ‘한 형제’라는 철저한 의식과 함께, ‘섬기는 삶’과 ‘낮추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의 삶임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고 실천에 옮기는, 은총 가득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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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근 신부님_“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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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60
최원석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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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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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59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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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삼용 신부님_걸리버 여행기와 겸손의 4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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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58
최원석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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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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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57
최원석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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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예수님은, 늘 자신을 낮추시는 분입니다."(마태 23, 12 마음에 와 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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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56
한택규엘리사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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