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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함승수 신부님 [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191300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8-19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마태 20,1-16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오늘 복음은 ‘포도밭 임자의 비유’입니다. ‘공정’이라는 원칙, 즉 누구나 노력한만큼의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지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열 시간 꽉 채워 일한 사람이나 똑같은 일당을 주는 비유 속 ‘밭 임자’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겠지요. 아니 그저 이해가 안되는 수준이 아니라 너무나 불공정하다고, 뭔가 비리가 있고 부정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게 당연할 겁니다.

 

오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한 첫번째 핵심 포인트는 포도밭 임자가 왜 오후 5시부터 일한 사람과 하루 종일 일한 사람에게 똑같은 일당을 주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힌트는 그가 자기 일꾼들을 부르는 ‘호칭’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일반적인 ‘고용주’들이 피고용인을 부르는 것처럼 ‘어이 이씨’, ‘이봐 김씨’하고 막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성만 떼어 부르는 건 그가 ‘한 사람’으로써 지닌 존엄성과 개별성을 무시한 채 그저 자기가 일을 시키는 수많은 노동자들 중 하나로 여기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속 밭 임자는 놀랍게도 자기가 고용한 이들을 ‘친구여’라고 부릅니다. 그들을 그저 ‘일꾼’으로만 여겼다면 일한 만큼만 삯을 주는 게 당연한 처사이지만 그들을 소중한 친구로 여겼기에, 한 집안의 ‘가장’인 그들이 자기 가족의 하루치 생활비를 충분히 벌지 못해 곤란한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밭 임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보다 일을 덜 한 사람이 같은 삯을 받는 것을 그저 억울하게만 여긴다면 그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주인의 친구가 아닌 종이자 일꾼으로만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래서는 삶이 주는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없겠지요.

 

오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한 두번째 핵심 포인트는 삶이 주는 행복을 누리는데 있어서 ‘꼴찌’가 아니라 ‘첫째’가 되는 방법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제대로 식별하는 것부터 시작되지요. 일꾼들이 받을 품삯인 ‘하루 한 데나리온’은 변하지 않으며 집착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 받게 되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상급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뜻으로 그렇게 정해져있으며 모든 신앙인이 똑같이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일하는 시간 동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지 여부는 내가 그 시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내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신앙생활이 주는 기쁨과 보람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여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지금 여기에서부터, 가능한 자주, 최대한 크게 누리기 위해 노력하는 일입니다.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이 나와 같은 삯을 받는 것을 억울하게 여기지 않고 주인과 함께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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