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묵상 : 신앙과 항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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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59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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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처절한 경험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물론 이런 주제는 사람마다 다 생각하는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주관적인 면이 많이 좌우하게 됩니다. 주관적인 면이 강하지만 철저히 그동안 신앙이라는 걸 개신교 포함해서 다 포괄적으로 봤을 때 진단해 본 결과를 말씀드립니다. 저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항구하려면 절대적으로 자기의 신앙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알아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학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설프게 알아서는 안 됩니다.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여기서 공부라는 게 학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널리 공인된 자료와 연구를 통해서나 역사적으로 검정되고 축적된 신앙 지식을 통해서 그 지식을 근간으로 해서 자기에게 맞는 지식으로 변환을 해서 자기만의 신앙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건 하느님을 지식으로 알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것과 하느님을 아는 것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신앙이 좋다고 해서 하느님을 잘 아는 것과도 다릅니다. 신심은 신앙에서 그 출발점을 가집니다.
신심은 신앙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마음으로 신앙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지표를 나타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심이 좋다고 해서 믿음이 좋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경우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믿음과 신심은 비례관계이지만 정비례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신심도 그 본래의 뿌리인 신앙과 믿음이 자신이 모르는 지식이라든지 이런 것에 기초를 두고 지금 현재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런 근거에 기초해서 판단을 한 후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고, 믿음도 좋다고 판단을 할 수는 있지만, 그 판단이 앞으로의 신앙과 믿음에도 계속 그와 같은 모습으로 유지될 거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자신감도 신앙이 무너질 수 있는 기회와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고 신앙적으로 볼 땐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 있는 미완성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진단을 해봤을 때 그 진단이 잘 나왔다고 해도 그 진단이 계속 그렇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하나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신앙에는 빌미라는 걸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빌미는 처음에는 신앙이 무너질 수 있을 정도의 역할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고 그렇게 해서 자신과 양보를 해 타협을 하지만 이게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신앙을 과신해 절대 난 그렇지 않을 거야라고 자신있게 생각을 할 수가 있지만 그 어떤 사람도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 다짐을 끝까지 잘 지키기는 자신의 다짐을 지키기 위한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런 환경에 놓이면 자신의 굳은 의지와 상관없이 그 빌미가 자신이 그동안 지키고 간직해온 신앙의 신조와 신념까지도 흔들 수 있는 무서운 파괴력으로 작용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저의 처절한 체험담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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