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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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41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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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병자성사를 다녀왔습니다. 보통 병자성사는 아픈 분이나 가족이 성당에 연락해서 청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성당 교우라고 생각하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달랐습니다. 한 분은 예전에 성당에 다녔지만, 미국에 오면서 구세군 교회의 도움을 받았고, 그 뒤로 구세군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예전에 성당 사무장까지 했지만, 미국에 와서 교회 다니는 분의 도움을 받고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힘든 시간이 오자 다시 성당에 연락했습니다. 목사님을 찾지 않고 신부님을 찾은 이유는, 그래도 처음 신앙의 뿌리가 성당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지낼 때는 자주 찾지 않았다가도, 힘들고 아플 때면 친정어머니를 찾는 딸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딸이 잘될 때도 사랑하고, 딸이 힘들 때도 사랑합니다. 오래 찾아오지 않았다고 문을 닫지 않습니다. 서운함이 있어도 먼저 밥을 차려 주고, 아픈 마음을 안아 줍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정성껏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안드레아 형제님이 건강을 회복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리드비나 자매님과 헬레나 자매님에게도 시간이 되면 성당에 함께 오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당은 조건을 따져서 문을 여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집은 돌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집입니다. 교회는 아픈 이를 외면하지 않고, 길 잃은 이를 품어 주며, 다시 시작하려는 이를 축복하는 어머니의 품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기가 더 쉽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 묻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제자들도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비슷합니다. 부유함은 많은 편리함을 줍니다. 좋은 집을 가질 수 있고, 좋은 차를 탈 수 있고,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물이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것은 재물 자체가 아닙니다. 재물이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마음입니다. 재물은 바닷물과 같을 때가 있습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마릅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집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 때문에 남을 속이기도 하고,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하고, 가난한 이를 외면하기도 합니다. 재물이 많아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재물 때문에 마음이 닫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재물이 우리의 손에 있으면 도구가 되지만, 재물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면 우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곳간에 재물을 쌓아 두고 기뻐하던 부자의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그 부자는 많은 것을 쌓아 두고 이제 편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하느님께서는 그의 목숨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가 쌓아 둔 재물은 하나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썩지도 않고 좀먹지도 않는 하늘에 재물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재물을 쌓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는 것, 아픈 사람을 찾아가는 것, 외로운 사람 곁에 머물러 주는 것, 갇힌 이를 기억하는 것, 바로 그것이 하늘에 재물을 쌓는 일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을 보고 사제와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아파하는 이웃 앞에서는 마음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멈추었습니다. 상처를 싸매 주고,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사람이 참된 이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재물을 쌓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사랑으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였던 자캐오도 만나셨습니다. 자캐오는 세리였고 부자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키가 작아서 나무 위로 올라갔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캐오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예수님을 만난 자캐오는 변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주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제가 누구에게서 빚진 것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부자라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할 때 하늘나라에서 멀어집니다. 반대로 부자일지라도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며,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면 하늘나라의 문은 활짝 열립니다. 자캐오는 재물을 잃은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었습니다. 절반을 나누었지만,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세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때로 내가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재물에 대한 집착, 체면에 대한 집착, 내 뜻만 고집하는 마음,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려놓는 사람에게 빈손으로 끝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백 배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병자성사를 청한 그분들을 생각합니다. 삶의 길에서 잠시 성당과 멀어졌지만, 아프고 힘든 시간에 다시 하느님의 집을 찾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친정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자캐오를 부르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는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으로 품어 주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돌아올 수 있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쌓아야 할 재물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은행 통장에 쌓는 재물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늘에 쌓는 재물입니다. 용서의 말 한마디, 따뜻한 방문, 병든 이를 위한 기도,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 다시 돌아오는 이를 향한 열린 마음이 하늘에 쌓이는 재물입니다. 그런 재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은 하느님 앞에서 영원히 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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