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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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5 박소영 [b38927] 스크랩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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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사 때마다 이 자비송을 바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안고 있는 세상의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일까요?
좋은 직장을 구하고, 자녀와 부모의 건강을 지켜 주시며,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이 자비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비를 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로마 11,30-32)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다시 하느님께 돌아와 그분의 뜻에 순종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그분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테살 4,3)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23. ‘예, 아버지’, 3)
"하느님의 뜻은 바로 너희가 거룩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299. ‘하느님의 뜻’, 4)
"하느님의 뜻은 내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너희에게도 너희의 성화가 이루어지는 데에 있다! 너희가 삶을 통해, 갈수록 그분께 대한 완전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자비를 청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을 채워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루카 6,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시어, 자비를 입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태 9,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시편 51,3-4)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그래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청원이 아닙니다. 그 기도 안에는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죄를 깨끗이 씻어 주소서. 그리고 제가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게 하소서.”라는 고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비송을 바칠 때, 하느님의 자비를 입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마음이 하느님 자비 5단 기도에서 고백하는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의 참된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과 관련하여 성녀 파우스티나에게 있었던 일화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성녀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모습을 화가에게 설명하여 자비의 예수님 성화를 그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성녀는 자신이 환시에서 본 예수님의 모습만큼 아름답게 표현되지 않았다고 느껴 슬퍼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림의 위대함이 색이나 붓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은총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의 삶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어 주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당신의 은총을 이루시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자비를 청하는 이유도 세상의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변화되고 거룩해지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뜻과 집착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여, 그분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을 닮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참고> 자비의 예수님 성화
① 외제니우시 카지미롭스키 — 1934년 빌뉴스 성화 (최초의 성화)
성녀 파우스티나가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머물렀던 당시 폴란드령 빌뉴스에서, 그녀의 지도를 받아 1934년에 제작된 최초의 자비의 예수님 성화입니다. 성녀 파우스티나는 제작 기간 동안 카지미롭스키의 작업실을 여러 차례 찾아가 자신이 본 예수님의 모습을 설명하고 그림의 제작 과정을 지도했습니다.
오늘날 빌뉴스는 리투아니아의 수도이며, 이 성화는 빌뉴스의 하느님 자비 성지에 모셔져 있습니다.
② 아돌프 힐라 — 1944년 크라쿠프 라기에브니키(Łagiewniki) 성화
성녀 파우스티나는 1936년 폴란드 크라쿠프로 돌아온 뒤 라기에브니키 수도원에서 말년을 보냈으며, 1938년 10월 5일 선종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943년, 화가 아돌프 힐라가 자비의 예수님 성화를 제작했고, 1944년에는 크라쿠프 라기에브니키 성당의 제대에 맞도록 새로운 성화를 제작했습니다.
현재 폴란드 크라쿠프 라기에브니키의 하느님 자비 성지에 모셔져 있는 작품이 바로 이 두 번째 성화입니다.
힐라의 첫 번째 작품에는 풍경이 배경으로 들어갔지만 이후 수정되었으며, 현재의 성화는 어두운 배경과 바닥을 배경으로 예수님께서 서 계신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1944년 4월 16일 축복된 이 성화는 이후 널리 복제되면서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자비의 예수님 성화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카지미롭스키의 1934년 성화는 성녀 파우스티나가 직접 지도를 하여 제작된 최초의 성화인 반면, 힐라의 1944년 성화는 성녀가 선종한 뒤 제작된 후대의 성화라는 점에서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③ 로버트 스켐프 — 1982년 성화
로버트 스켐프의 작품은 마리아 수도회의 의뢰로 제작되어 1982년에 완성된 후대의 자비의 예수님 성화입니다. 이 작품의 원본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전달되었으며, 이후 교황이 탄자니아의 ‘하느님 자비의 국립 성지’(National Shrine of The Divine Mercy)에 기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카지미롭스키와 힐라의 작품과 비교하면 예수님의 얼굴과 표정, 빛과 배경의 표현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오른손으로 강복하시고 왼손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가슴에서 두 줄기의 빛이 흘러나오는 기본적인 도상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스켐프의 성화는 가슴에서 나오는 자비의 빛이 보는 이를 향해 직접 뻗어나가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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