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우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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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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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20주일>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15,28)
'회계하는 이방인이 되자!'
오늘 복음(마태15,21-28)은 '가나안 여자의 믿음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마태15,22)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마태15,25)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15,27)
이방인 여자인 가나안 여자의 이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15,28) 그리고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작은 믿음은 겸손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겸손한 사람만이 온갖 수모와 고통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합니다. 반대로 교만한 사람은 아주 작은 수모와 고통 앞에서 쉽게 믿음이 흔들립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작은 믿음이 나를 참으로 겸손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겸손을 통해서 나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겸손의 덕을 간직하지 못한 죄,
겸손을 통해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한 죄,
그래서 내 좋을 대로 마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죄,
이 죄로부터 해방되는 이방인이 됩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갑시다!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주일은 '주님께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부활하는 날'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복된 날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배반자 이스라엘아, 돌아오너라.
나는 너에게 성난 얼굴을 보이지 않으리라.
나는 자애로우니
영원히 진노하지 않으리라.
단지 네 죄를 시인하기만 해 다오.
네가 주 너의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했고
내 말을 듣지 않은 죄를."(예레3,12.13)
가뭄이 심한 남부지방에 드디어 단비가 내린다고 하네요.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 예레3,25)
김건태 신부님_모든이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
[말씀]
■ 제1독서(이사 56,1.6-7)
유배의 땅 바빌론에서 적지 않은 기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 이제 상당수의 이방인과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해야 했던 이 백성들의 최대 관심거리 가운데 하나는 이방인들의 구원 문제였습니다. 이방인들도 구원될 수 있는가 익명의 예언자 제3이사야는(이사 56-66장), 이방인들이 참된 하느님과의 계약을 존중하고 계약법을 준수한다면 구원은 얼마든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구원의 대상이 되도록 힘써야 함을 역설합니다.
■ 제2독서(로마 11,13-15.29-32)
동족들의 운명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사도 바오로는 동족들, 곧 유다인들이 지금은 그리스도 교회를 저버리고 있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것임을 예측합니다. 하늘 나라의 문이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다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의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나, 이들은 언젠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피력합니다. 이들 역시 지금까지 폐쇄적인 구원관에 젖어 있던 잘못된 의식으로부터 회개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 복음(마태 15,21-28)
복음저자 마태오가 속해 있던 공동체는 개종한 유다인들이 다수를 이루던 공동체로서 전통적인 유다교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었습니다. 유다교도들은 폐쇄적인 구원관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원관에 맞서 마태오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기초로 구원의 보편성을 역설합니다. 예수님은 몸소 이방인들의 땅 “티로”와 “시돈”을 방문하셨으며, 가나안 여인과 대화까지 나누셨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빵”이 이제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질 것입니다.
[새김]
우리는 때로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공동체 밖의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잊고 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계신 분이라는 사실이 하나의 크나큰 은총임을 깨달아야 하며, 그러기에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 속에 머물도록 빛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이방 민족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빛의 역할을 하도록 초대를 받았으나, 자신들의 구원에만 집착한 나머지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백성에 뿌리를 두고 태어나셨으며, 이 백성의 영성과 문화의 영향 속에 성장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 백성으로부터 저버림을 받을 위협 속에서도 그들의 뿌리와 영성과 문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폐쇄적인 구원관을 질타하십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강아지”로 취급되던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을 자격, 구원이라는 은총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 뜻이 이 세상에서 구현되도록 기도하며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 하느님 마음을 관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모의 마음을 살펴보는 일일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마음, 오늘 이교도 여인이 생면부지의 예수님께 보여드린 그 마음 말입니다. 그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 곧 주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여인의 딸은 악령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은총을 입습니다.
이번 한 주간, 만나는 모든 이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서, 우리를 통해 그들이 주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힘쓰는, 의미 있는 나날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가나안 여인의 믿음
1. 믿음의 보편성과 하느님의 자비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에서 가나안 여인을 만나시는 장면을 전한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적의 이야기 그 이상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모든 인류에게 열리는 순간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이렇게 선포했다.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이사 56,6-7)
하느님의 구원은 어떤 민족이나 율법, 혹은 인간의 혈통에 제한되지 않는다. 교회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위하여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 하느님께 순종하며 진심으로 선을 찾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은총이 결코 거절되지 않는다.”(16항) 가나안 여인은 바로 이 진리를 자기 삶으로 증언한 첫 이방인 신앙인이었다. 그녀의 부르짖음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22절) 이것은 단순한 도움 요청이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신앙고백이었다.
2. 침묵 속의 하느님: 믿음의 시험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23절) 그 침묵은 거절이 아니라, 믿음을 자라나게 하는 하느님의 방식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분의 침묵은 여인의 믿음을 꺾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Sermo 77,2 의역)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침묵하신다. 그러나 그 침묵은 부재의 침묵이 아니라, 더 깊은 신뢰로 우리를 부르시는 침묵이다. 가나안 여인은 이 침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25절) 하고 부르짖는다. 그 믿음은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선 복음의 보편성을 상징한다.
3. “자녀들의 빵”과 “부스러기”: 겸손한 믿음의 힘
예수님의 말씀이 매우 도전적으로 들린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26절) 여인은 상처받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믿음의 지혜로 응답한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27절)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녀는 주님을 논박하지 않고, 다만 겸손으로 이겼다. 그녀의 승리는 말의 논리가 아니라, 믿음의 겸손에 있었다.”(Homilia in Matthaeum 52,3 의역) 이 짧은 대화 속에서 ‘하늘 나라의 질서’가 뒤바뀐다. 이스라엘의 경계 안에 있던 구원이 겸손과 신앙의 태도를 통해 이방인에게로 흘러간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길은 혈통이나 지식이 아니라, 오직 믿음과 겸손이다.
4.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다.”: 복음의 새로운 전환점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선언하신다.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28절) 이 말씀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복음의 지평을 새롭게 여는 선언이다. 이방인 여인의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구원이 유다인에게서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로 확장됨을 보여 주신다. 바오로 사도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로마 11,32)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구원의 은총을 차별 없이 주시되, 그 은총에 응답하는 믿음의 자유를 인간에게 맡기셨다는 뜻이다.
5. 오늘을 사는 믿음의 길
가나안 여인은 하느님의 침묵을 통과한 사람, 그리고 믿음으로 하느님의 경계를 넘어선 사람이었다. 우리도 그처럼, 하느님의 응답이 더딜 때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자격이나 혈통이 아니라, 겸손한 신뢰로 주님 앞에 서며, 타인을 향한 배타적 신앙이 아니라, 자비로 열린 신앙을 살아가야 한다. 일치 교령은 이렇게 가르친다. “성령께서는 모든 사람 안에서 은총으로 일하시며, 그들이 하느님을 진실히 찾고 그분의 뜻을 따르도록 감동하신다.”(3항 요약) 가나안 여인은 바로 이 성령의 감동에 응답한 사람이다. 그녀의 믿음은 단순히 자기 딸을 낳게 한 믿음이 아니라, 교회의 보편성과 선교의 원리를 미리 드러낸 믿음이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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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나기정신부의 편지 166번째 연중 제20주일 (8월 16일) 함께 나눌 말씀은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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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8
오완수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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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16. 연중 제20주일 / 한상우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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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칠등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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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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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5
이경숙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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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삼용 신부님_죽이 되든, 밥이 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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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4
최원석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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