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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8월 16일 (일)연중 제20주일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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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191222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4:47

캐나다의 앨버타주는 석유 개발로 큰 수익이 생겼을 때 주민들에게 일정 금액을 나누어 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알래스카주는 지금도 석유 수익을 바탕으로 조성된 기금에서 주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저도 코로나 팬데믹을 지내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지원을 받았고, 신문사도 직원들의 인건비를 지원받았습니다. 보통 우리는 주민은 세금을 내고, 정부는 그 세금으로 나라를 운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큰 재난이 닥치거나, 공동의 자산에서 이익이 생기면 국가는 그 이익을 다시 주민들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여러 형태의 지원을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될 때, 그 이익을 어떻게 사회와 나눌 것인지에 관한 논의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 소외되는 사람,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열매가 소수에게만 머문다면 두려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열매가 함께 나누어진다면 기술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천국과 지옥에 관한 재미있는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는 똑같이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아주 긴 젓가락과 긴 수저가 주어졌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그 긴 젓가락으로 자기 입에 음식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젓가락이 너무 길어서 제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 밀치고 다투다가 음식은 바닥에 떨어졌고, 사람들은 굶주렸습니다. 반대로 천국에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긴 젓가락과 긴 수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입에 넣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먹여 주었습니다. 서로서로 먹여 주니 모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음식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도구의 차이도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차이였습니다. 나만 살겠다는 마음은 지옥을 만들고, 서로 살리겠다는 마음은 천국을 만듭니다.

 

예전에 선배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말은 적게 하고, 지갑은 기쁘게 열어야 한다.” 말이 많아지고 지갑이 닫히면 후배들에게 존중받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후배들의 일에 간섭하고 야단치면 꼰대소리를 듣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은 줄이고 마음을 열며, 필요할 때 기쁘게 나누는 선배는 후배들에게 존경받습니다. 후배들이 제게 붙여 준 별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데렐라입니다. 모임이 있으면 저는 적당한 시간이 되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신데렐라가 자정이 되기 전에 돌아간 것처럼, 저도 시간이 되면 돌아간다고 해서 조데렐라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얼마니입니다. 가능하면 후배들과의 자리에서 지갑을 자주 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명 브랜드 이름을 빗대어 얼마니라고 불렀습니다. 고맙고도 재미있는 별명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받은 것이 많기에 조금이라도 나누며 살고 싶었습니다.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은총입니다.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는 것도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부자 청년은 계명을 잘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거짓으로 증언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켰습니다.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 정도로만 살아도 좋은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단순히 계명을 지키는 삶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마음의 자유였습니다. 재물에 묶이지 않는 자유, 가난한 이웃을 바라보는 연민, 그리고 하느님을 전적으로 따르는 용기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계명을 지켰지만, 재물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선한 일을 하고 싶었지만, 가진 것을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원했지만,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재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부자 청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미사에 참례하고,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 것을 나누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내 시간, 내 재능, 내 재물, 내 마음을 나누는 일에는 망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라.” 완전한 사람은 모든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완전한 사람은 많이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선한 일은 계명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선한 일은 가난한 이웃에게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민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눔은 남는 것을 던져 주는 일이 아닙니다. 나눔은 이웃을 나의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나눔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말은 조금 줄이고, 마음은 더 열고, 손은 더 기쁘게 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가정이 천국이 되고, 우리의 공동체가 천국이 되고, 우리의 삶이 하느님 나라를 미리 보여 주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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