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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8월 16일 연중 제20주일

191220 박양석 [pys2848] 스크랩 20:28

2026년 8월 16일 연중 제20주일

 

 

사랑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특별히 상대방이 사랑을 주지 않음에 크게 슬퍼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 친구 등의 사랑에서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겪었다고 울며 말합니다. 그러나 이때 자기 사랑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사랑인지, 욕망인지를 말입니다.

 

사랑이 욕망으로 흐를 때, 상대를 소유하려는 집착이 생겨납니다. 욕망의 본질은 자기 안의 불안을 달래는 데 있기 때문에, 그 불안을 달래줄 수 있는 상대가 늘 내 곁에 있어야 하고, 내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대를 소유하려고 할 때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자기 필요만을 청하고 있다면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일을 경험해도 이를 인정할 수 있고, 그 인정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게 되면서 진정한 사랑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때 상처받지 않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필요를 얻으려는 가짜 사랑인 욕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상대를 통제하려 하고, 사랑은 상대를 이해하려 합니다. 욕망은 상대를 소유하려 하고, 사랑은 상대를 자유롭게 합니다. 욕망은 확인을 요구하고, 사랑은 바라보고 존중합니다. 이렇게 욕망과 사랑 사이에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진짜 사랑을 보여주는 한 여인을 오늘 복음에서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십니다. 이방인 지역인 이곳에서 가나안 부인이 예수님을 알아보며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마태 15,22)라고 말합니다. 가나안인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이고, 종교적으로도 적대적인 존재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 이방인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이 여인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침묵을 통해 여인의 믿음이 점차 드러납니다. 처음에는 멀리서 소리치다가, 예수님께 가까이 와 엎드리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 응답합니다.

 

하느님의 침묵에 대해 묵상할 수 있게 됩니다. 침묵이 곧 거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응답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진실로 사랑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마태 15,23)라고 말하면서 여인의 고통보다 자신들이 겪는 불편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절한 도움의 목소리가 아닌 귀찮은 소음으로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가까이 있던 제자였지만 그분의 자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여인은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의 자비를 굳게 믿습니다. 하지만 조금 충격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

 

성경에서 개를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된다는 것을 기억할 때, 이 표현에 분노하거나 물러날 수 있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라면서 물러나지 않고, 더 큰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자녀들이 먹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빈약하지 않다고 믿은 것입니다.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딸이 살아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마태 15,28)

 

제자들은 자주 ‘믿음이 약한 자들’이라고 책망받지만, 이 여인은 칭찬받습니다. 이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끝까지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과연 어떠한가요?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기에, 어려움과 힘듦 속에서도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때가 바로 진짜 사랑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욕망이 아닌 사랑. 그 사랑은 어떤 상황이든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을 때 완성됩니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용서만큼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와 닮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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