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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6년 8월 14일 (금)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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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성모 승천 대축일

191183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4:26

제가 다니던 중앙대학교 부속 고등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었습니다. 1980년 청룡기 축구대회에서 결승에 올랐고, 상대 팀은 남강고등학교였습니다. 효창운동장에서 결승전이 있었고, 전교생이 응원하러 갔습니다. 결과는 중대부고의 승리였습니다. 응원전에는 약간의 긴장이 있었지만, 큰 충돌은 없었습니다.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고, 학생들은 목소리를 모아 응원했습니다. 그날의 응원은 선수들에게 힘을 주었고, 학교 공동체가 하나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응원전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는 학교가 있습니다. 연세대와 고려대, 고려대와 연세대의 응원전입니다. 응원은 선수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면 좋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조롱하고, 야유하고, 아픈 역사를 폄훼하는 응원은 응원의 품격을 떨어뜨립니다. 스포츠는 죽고 죽여야 하는 전쟁이 아닙니다. 스포츠는 깨끗한 매너와 결과에 승복하는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응원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소리가 아니라, 함께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일으켜 세우는 소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원의 장면을 봅니다. 마리아는 자기 앞에 다가올 일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벳도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 여인은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놀라움과 두려움, 책임과 은총을 함께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향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저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응원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베푸신 은총을 알아보았고, 그 은총을 축복하며 기뻐했습니다. 엘리사벳의 응원은 마리아를 세워 주는 응원이었습니다. 마리아 안에 계신 하느님의 일을 알아보는 응원이었습니다.

 

마리아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리아의 노래’, 곧 마니피캇이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이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나이다.” 마리아의 노래는 개인적인 기쁨의 노래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하는 노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며,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시는 분이십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가난한 이들의 희망이고, 억눌린 이들의 위로이며,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모든 이들의 응원가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는 교회가 선포한 성모님에 대한 믿을 교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성모님께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순명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들었던 성모님은 당혹스러웠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알았을 때 이렇게 응답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순명은 내가 원하는 것만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열정입니다. 성모님은 조용하고 수동적인 분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에서 볼 수 있듯이,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어떤 세상을 원하시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기억하시고, 굶주린 이를 배불리시며, 비천한 이를 들어 높이시는 분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열정은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향한 열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정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중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성모님은 그 부족함을 먼저 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성모님은 부족함을 보는 눈이 있으셨고, 필요한 것을 예수님께 청하는 믿음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요, 전구자라고 부릅니다. 성모님은 오늘도 우리의 부족함을 보시고,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 전구하십니다.

 

오늘은 우리가 사랑하고 공경하는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성모님께서 영혼과 육신으로 하늘의 영광에 들어가셨다는 교회의 믿음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희망의 표징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품에 안기셨듯이, 우리도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채워짐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채워지고, 사랑이 채워지고, 믿음이 채워지는 것이 바로 영원함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안에서 우리의 삶이 사랑으로 온전히 채워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성모님의 삶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자기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고,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는 더 많은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은 우리 민족에게는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광복은 어둠에서 빛을 되찾은 날입니다. 그러나 아직 분단된 조국은 절반의 광복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언젠가 분단의 상처가 치유되고, 하나 되는 조국으로 진정한 광복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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