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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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77 박양석 [pys2848] 스크랩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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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경상도 남자와 서울 여자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식사 때마다 국이 싱겁다며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내는 “나는 괜찮은데?”라면서, 너무 짜게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면서 남편을 설득했습니다. 결혼한 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식사 중에 말합니다.
“일 년 살았는데 도저히 못 참겠다. 왜 국이 항상 싱거워?”
아내도 참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합니다.
“당신에게 맞추려고 소금을 늘 더 넣었어. 사실 나는 너무 짜!”
어떻게 되었을까요? 설마 국 하나 때문에 헤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이 부부는 현명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만든 국에 남편이 직접 소금을 넣을 수 있도록 소금을 식탁에 놓은 것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닮음이지만, 사랑의 본질은 다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애를 시작하면서는 “우리는 정말 비슷해”라는 말을 하지만, 결혼 후에는 “우리는 완전히 달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 변했어!!”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단지 연애의 감정이 본 모습을 덮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서로 조율하는 것보다 적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때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나약함으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 19,3)라고 묻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의 율법 논쟁을 배경으로 합니다. 어떤 율법 교사는 간음과 같은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을 때만 이혼을 허락했고, 또 다른 교사는 음식을 태우거나 남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아주 사소한 이유라도 이혼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이 논쟁에 끌어들여, 어느 쪽을 택하든 비판받게 하려는 함정을 팝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혼인의 본질을 이야기하십니다. 즉,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라고 하십니다. 혼인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인간의 편의나 변심으로 이 신성한 결합을 깨뜨릴 권한이 없음을 강조하십니다. 모세가 이혼을 제도화한 것도 이혼을 장려하기 위함이 아니라,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버림받은 여성의 생존권을 지켜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야 다른 남자와 재혼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인의 의미가 퇴색되고 쉽게 깨어지는 시대입니다. 과연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기도하면서 둘이 아닌 한 몸을 만들고 있는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써 전체가 되는 것이다(반 고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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