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6년 8월 13일 (목)연중 제19주간 목요일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19115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8-12

김건태 신부님_형제를 얻는 일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어린아이처럼 연약한 사람들,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들에 관한 관심과 배려의 말씀에 이어, 오늘은 공동체 내부의 문제가 주제로 떠오릅니다. 구체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죄문제입니다.

 

당시 유다교의 엄격한 규정, 곧 죄인은 즉시 공동체에서 추출해야 한다는 규정과 비교해 볼 때, 엄격의 정도를 완화하려는 의도가 돋보입니다. 아마도 유다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들, 다시 말해서 수구파 신자들은 그들이 준수해 온 기존의 유다교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나, 예수님은 공동체 전체에 알리기 전에 먼저 형제적 사랑으로 잘못을 바로잡는 시도를 한두 차례 거칠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형제를 얻는 일또는 잃지 않는 일이 중요하며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형제를 얻는 일이란 그 형제를 다시 신앙으로 이끌어 들인다거나 개인적인 형제애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공동체를 떠나려고 하거나 공동체에서 제명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구성원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이거나 받아들이는 일을 뜻합니다.

 

단둘이 만나서 타일러도, 그래도 안 되면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견책해도, 그래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하는 말씀에서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하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너는 더는 상관하지 마라. 더는 네 책임이 아니다.’ 하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또한 이제 무슨 일이든 간에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다하는 의미까지 내포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말씀 역시 형제를 얻는 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형제를 얻기 위한 세 단계는 전적으로 교회공동체가 밟아갈 단계이며,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는결정도 교회공동체에 부여된 권한입니다. ‘맺고 푸는 권한은 본디, 앞서 살펴보았듯이(마태 16,19), 우선 베드로에게, 나아가 사도들에게 위임되었던 권한입니다. 이 권한은 물론 공동체를 통해 행사되어야 하지만, 무거운 책임 정신이 동반되는 권한입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지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따라서 형제를 얻기 위해 죄인과 어려운 대화를 할 때, 교회공동체는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지혜를 내세워서는 안 되며, 그 형제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지혜를 청해야 함을 숙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제자들,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불러 모으셨으므로, 이들이 공동체의 어려운 문제 해결을 위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다면 언제나 함께하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형제를 얻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이 일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의무로 가르치십니다. 필요한 경우 공동체는 특정인을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는결정도 내려야겠지만, 그 이전에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여 죄인과 대화하고 그를 타이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같은 본당에 소속되어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며,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봉사하는 가운데, 본당 공동체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일조하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공동체 안에서 갈등과 죄의 문제를 다루신다. 인간이 모인 곳에는 상처와 오해가 생긴다. 예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랑과 자비의 충고, 그리고 공동체적 치유를 제시하신다.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15절) 목표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되찾는 것이다. 
 
예수님은 먼저 “단둘이” 만나라고 하신다. 이는 은밀히 그의 상처를 싸매 주려는 배려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사랑의 태도다. “충고”는 꾸짖음이 아니라, 구원으로 이끄는 손길이다. 만일 개인적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대화하라고 하신다. 공동체의 지혜와 사랑이 함께할 때 형제가 더 잘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내 듣지 않는다면, 교회의 권위에 그를 맡기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교회에 “매고 푸는 권한”(18절)을 주셨다. 이는 교회의 권위가 인간적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열쇠이자 자비의 도구임을 의미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그리스도께서 형제를 구원하는 길을 보여 주신다. 그 목적은 상대방을 벌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다시 얻는 것이다.”(Hom. in Matt. 60 요약)라고 하였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 없이 훈계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으로 훈계하지 않는다면, 그 침묵은 죄에 동조하는 것이다.”(Sermones 요약)라고 하였다. 성 베네딕토 규칙에는 공동체 안에서 죄를 짓는 형제에 대한 교정은 언제나 점진적이고 인내심 있게, 형제를 다시 얻기 위한 사랑의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RB 23 참조)고 가르친다. 교리서는 “형제적 훈계는 사랑의 본질적인 표현이며, 그것은 영혼의 구원을 위한 자선 행위이다.”(1829, 2447항 참조)라고 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은밀히, 인내로,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 신앙은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이다. 개인적 대화가 실패했을 때 공동체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구원의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주 강조했다. “교회는 완전한 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인들을 치유하는 병원이다.” 형제의 잘못을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함께 치유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 시대는 분열과 갈등이 많은 사회이다. 주님의 약속대로, 두세 사람이 그분 이름으로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화해와 평화의 길을 열어주신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형제를 잃지 않는 법을 가르치신다. 충고는 정죄가 아니라, 사랑으로 형제를 다시 얻는 길이다. 공동체는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치유와 화해의 장이다. 기도는 마음을 모아 사랑으로 하나 되는 길이다.


이병우 신부님_"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18,15ㄴ)

 

'함께 천국으로 들어가자!'

 

오늘 복음(마태18,15-20)은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어라.',는 말씀과 '함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예수님께서는 '모두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두의 구원자'이십니다. 모두가 함께 구원되기를, 모두가 함께 천국에 들어가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마태18,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길 잃은 양들을 찾아나서시러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길 잃은 양들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복음에 드러나 있는 예수님의 큰 분노는 '그들 만의 잔치'였습니다. 그런 그들을 위선자로 부르시면서 크게 책망하셨습니다.(마태23,1-36 참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18,18)

 

우리의 죄는 너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입니다.

너와 함께 구원의 잔치에로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먼저 나와 하느님과 그리고 너와 꼬여 있는 매듭을 풀고, 너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 줍시다!

너의 구원을 위해, 모두의 구원을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18,19-20)

 

(~ 이사43,2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66 0

추천  1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