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6년 8월 12일 (수)연중 제19주간 수요일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19112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8-11

이병우 신부님_<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8.11)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18,10)

 

'낮춤(겸손)과 작음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마태18,1-5.10.12-14)은 세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과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와 '되찾은 양의 비유'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18,1)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렇게 이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18,4)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18,10)

 

이어서 '되찾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18,14)

 

오늘 복음의 화두는 '낮춤(겸손)과 작음'입니다.

이는 구원의 길이며,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도구입니다.

 

오늘은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녀 클라라는 자신을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라고 말했을 정도로, 성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했던 제자입니다.

성녀 클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친구이자 동반자입니다.

성녀 클라라는 성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거룩한 단순성과 겸손과 가난의 삶'을 따라 살았습니다.

 

'Minorum', 곧 '낮춤(겸손)과 작음'은 성 프란치스코가 찾은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육화(성탄) 안에서 발견한 보화입니다. 그래서 수도회의 이름을 '작은 형제회(O.F.M. Orodo Fratrum Minorum)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마태25,31-46)에서 당신 자신을 '가장 작은 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에 있는 가장 작은 이가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25,45)

 

우리 주위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내가 낮아져야 작은 이들이 보입니다.

내가 작아져야 예수님이 보입니다.

 

내가 낮아지고 작아지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온 세상을 두루다니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우리도 '기쁨의 찬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와 성 프란치스코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이사36,22)

 

조욱현 신부님_보잘것없는 사람들이라도 

 
오늘 복음은 제자들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1절)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열을 묻고, 비교하며, 더 큰 자리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시선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신다. 한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며,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3절)라고 선언하신다. 하늘 나라의 위대함은 세속적 경쟁과 권위가 아니라, 겸손과 단순함, 그리고 작은 이들에 대한 사랑에 달려 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본보기로 삼으신다. 아이는 부모의 말에 순수하게 믿음을 두고, 온전히 사랑한다. 이런 단순한 신뢰와 겸손이야말로 신앙인의 핵심이다. 예수님께서는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필리 2,7) 자신을 낮추셨고, 하늘 나라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 낮춤을 통해 드러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10절) 작은 이들은 사회적으로 보잘것없고, 쉽게 무시되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느님을 뵙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 각자가 하느님 앞에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예수님은 작은 이들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양의 비유로 다시 설명하신다. 아흔아홉을 두고서라도 잃은 하나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곧 복음의 핵심이다. 구원은 다수를 위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아버지의 집요한 사랑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주님은 제자들이 큰 자리를 다투자, 어린이를 가운데 세우셨다. 이는 그들에게 단순함과 겸손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다.”(Hom. in Matt. 58)라고 한다.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어린이와 같이 단순한 마음 안에 더욱 완전하게 드러내신다.”(Adversus Haereses, IV 요약)라고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오히려 더 크게 현존하신다.”(Sermones 요약)라고 하였다. 
 
교리서는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이들을 당신께 가까이 오도록 초대하시며, 그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보여 주신다.”(526, 2785항 참조) 사목 헌장은 이렇게 선언한다. “인간의 존엄은 사회적 지위나 능력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누구도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 된다.”(12, 27, 29항 참조) 교회의 전통은 언제나 가장 작은 이들, 가난한 이들, 목소리 없는 이들을 우선으로 돌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가르쳐 왔다. 
 

잃은 양의 비유는 우리 각자가 하느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 준다. 아흔아홉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주님은 찾아오신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다른 이들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김건태 신부님_가장 큰 사람

 

어제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이어서 별도의 특정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했지만, 본디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베드로와 성전세 납부라는 까다로운 문제로 대화하시면서, 지상 교회의 책임자가 될 베드로가 교회공동체의 행동 양식을 지혜롭게 결정하고 집행해 나갈 것을 독려하시는 장면이 목격됩니다.

오늘부터 주말까지 묵상하게 될 마태오 복음 18장에서 이에 관한 예수님의 구체적인 가르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교회론적이라 불리는 이 가르침은 현대인의 논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삶은 논리를 비웃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오로 서간에서처럼 여기서도 우리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과 그렇게도 흡사한 현실을 안고 살아가는 구체적인 공동체를 만납니다. 마태오 복음 저자는 완벽한 하나의 교회법이 아니라, 이 공동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공동체의 책임자들에게 호소하는 듯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하는 제자들의 질문으로 열립니다. 이 질문으로 가늠해 볼 때, 제자들은 공동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정신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가장 큰 사람문제로 고심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상징적인 행위로 이 질문에 답하십니다: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이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라는 말씀이 아니라, 미래가 눈앞에 열려 있는 어린아이처럼 자만하지 않고 순수하며 모든 것을 내맡기는 존재로 거듭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바라보며 늘 성장하기를 바라시며 격려하신다는 사실을 의식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또한 연약한 존재, 예나 지금이나 쉽게 경시되거나 무시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어린이 개념 속에는 이미 어린이를 비롯한 연약한 모든 존재, 쉽게 경시되거나 무시되는 모든 존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작은 이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문맥으로 보아, 여기에서 작은 이들이란 이미 믿음은 가지고 있으나, 믿음이 견고하지 못해서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는 나약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고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기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믿음이 약한 신자들을 도와주어야 하며, 길을 잃고 헤맨다면 찾아서 다시 공동체로 이끌어 와야 하는 참 목자로서의 사명 앞에 섭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뒤를 이어 목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여야 할 사도들에게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순수한 모습을 갖추고, 어린아이처럼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며,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도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나가도록 독려하십니다. 그 모습이 진정 가장 큰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돕는 가운데, 큰 사람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77 0

추천  2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