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상 에세이 2부> 천상 정원에 들어가기 위하여 ―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탈출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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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2 박소영 [b38927] 스크랩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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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2부>
✦ 천상 정원에 들어가기 위하여 ―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탈출 3,5)
우리는 지난 에세이 「하늘의 문, 천상 정원, 그리고 십자가의 길」 에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하나의 길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길은 하늘의 문을 통과하여 극기와 회개, 신앙과 기도, 겸손과 순결, 애덕과 성덕의 '천상 정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여정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천상 정원에는 세속 정신과 부정한 것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천상 정원이 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7. 모두가 내게 봉헌하기 바란다,8-9)
"어떤 물건이 봉헌되어 축성을 받으면 오직 성스러운 용도로만 쓰일 뿐 그렇지 않은 사용은 금지된다. 그것이 하느님을 예배하는 데만 쓰이도록 정해진 물건의 특성이다.
사람도 완전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경우,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 봉헌되어 축성된 물건이 오직 거룩한 용도로만 사용되듯이, 세속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물건은 그 거룩한 곳으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도 죄와 악, 세속의 애착과 욕망을 벗어야 합니다.
이처럼 봉헌된 것은 거룩한 목적을 위해 구별되듯이, 성경 또한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에는 어떠한 부정한 것도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히 증언합니다.
(묵시록 21,11.22.27)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정한 것은 그 무엇도, 역겨운 짓과 거짓을 일삼는 자는 그 누구도 도성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묵시록의 거룩한 도성은 하느님께서 친히 계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부정한 것도, 거짓과 악을 따르는 이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상 정원 또한 이와 같습니다.
저는 묵시록의 이 거룩한 도성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성모님의 신비를 떠올리게 한다고 묵상합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인 하늘의 문을 통과하여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천상 정원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같은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탈출 3,5)
모세가 신을 벗은 것은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죄와 세속의 애착을 내려놓아야 함을 상징합니다.
이는 또한 회개의 길의 첫째 단계인 "자기를 버리고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는 거룩함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회개의 길의 첫째 단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60. 회개의 길,2-3)
"내 전투에서 너희가 들고 싸워야 하는 무기는 기도와 회개라는 무기이다. 오늘 나는 너희 각자가 걸어야 할 회개의 길을 알려 주고자 한다.
첫째 단계는 자기를 버리고 부정(否定)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매일 미사에 참례한다면, 과연 삼위 하느님과 참된 인격적 만남을 이룰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을 통해 성전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다면, 과연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으며 그분과 참된 인격적 만남을 이룰 수 있을까요?
나아가 세속적인 목적으로도 사용되는 물건을 이용하여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를 바치며, 심지어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성상이나 성체 앞에서 경배를 드릴 때에도, 과연 하느님께서 계시는 그 거룩한 현존 안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묵상할 수 있도록, 성모님께서는 485번 「마지막 때」와 539번 「나의 비밀」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마지막 때 교회 안에서 일어날 현실을 예고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적인 무법자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 하느님의 성전에 자리 잡고, 그 내부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움으로써 예언자 다니엘이 예고한 가공할 독성 행위가 자행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485. 마지막 때,15-16)
넷째 표징은 그리스도께 대적하는 자, 곧 그리스도의 적이 저지를 흉측한 독성죄이다. 그는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가 그분의 옥좌에 앉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하느님으로 예배하게 할 것이다.
"그는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과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들에 맞서 자신을 그보다 더 높이 들어 올립니다. 그리하여 신으로 자처하며 하느님의 성전에 자리 잡고 앉습니다. 그 무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작용으로, 그는 온갖 힘을 가지고 거짓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며, 멸망할 자들을 상대로 온갖 불의한 속임수를 쓸 것입니다."(2테살 2,4.9-10.)"
(539. 나의 비밀,8-9)
"교회에 관한 ‘비밀’
대대적인 배교의 풍조가 교회 내부에서 극에 달하여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며, ‘복음’과 참신앙에서 멀어지는 일반적 추세로 말미암아 교회 분리가 일어나리라. 그리스도의 적인 무법자(2테살 2,3)가 교회에 들어와, 그 내부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마태 24,15; 다니 9,27; 11,31; 12,11)을 세움으로써 예언자 다니엘이 예언한 가공할 독성 행위가 자행되리라."
우리가 현실 안에서 특히 깊이 묵상해야 할 부분은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거룩한 성전 안에 황폐가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마치 성전 안에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가 생기고, 그 틈을 통해 세속 정신이 스며드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다면 그 통로는 무엇이겠습니까?
앞에서 질문드렸던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처럼 세속적인 목적으로도 사용되는 물건들을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그 통로를 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책과 여러 글, 그리고 영상을 통해 이 점을 반복해서 나누어 왔습니다.
한 예로, 「체나콜로에서, 아버지의 뜻이」 책의 <제8장 배교> 편에서 나누었던 성전에서의 한 체험을 다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체나콜로에서, 아버지의 뜻이」책의 '<제8장> 배교' 중
✦ 성전에서 받은 경고
저는 성당에서의 한 경험을 통해, 성전 안에서는 온전히 주님께 집중해야 함을 깊이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미사 중 영성체 직후 미사가 끝나자마자 급한 용무 때문에 스마트폰을 켜려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 순간 갑작스러운 다리 고통이 찾아와 주님께서 제 마음을 강하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 아픔은 마치 예수님의 발등에 못이 박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체험이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 저는 성전 안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임을 분명히 깨달았고, 그때부터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스마트폰을 끄고 오직 주님께만 마음을 집중하려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왜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지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흐름이 점차 일반화되는 현실을 바라보며,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대대적인 배교의 풍조가 이미 교회 안에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지난 「묵시록의 우상, 텔레비전을 넘어 스마트폰과 AI로」와 「진리를 잃어버린 시대, 이성의 절대화와 상대주의의 독재」 에세이에서도 나누었듯이, 오늘날 배교의 풍조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에 따른 대중매체 환경의 변화, 그리고 디지털 시대가 만들어 낸 상대주의적 사고 구조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묵상 에세이 2부> '✦ 묵시록의 우상, 텔레비전을 넘어 스마트폰과 AI로' 중
오늘날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하느님께 묻기보다 검색창에 묻고, 침묵 속에서 기도하기보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추천을 따라갑니다. 과거의 우상은 신전 안에 세워져 있었지만, 오늘날의 우상은 우리의 손안과 주머니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세속적 사고방식이 교회 안에도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기술 문명, 인간 중심의 사고, 물질주의와 자기 숭배의 문화는 점차 교회 안으로 침투하여 영혼보다 효율을, 기도보다 활동을, 거룩함보다 인간적 칭찬과 인정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에 대해 깊은 근심을 드러내셨습니다.
(509. 나는 몹시 근심하고 있다,5)
"나는 몹시 근심하고 있다. 교회를 위협하여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하려는 악한 세력이 교회를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메이슨은 그 자체의 악마적 세력으로 본거지를 바로 교회의 심장부, 곧 내 성자 예수님의 ‘대리자’가 살고 있는 곳에 세우고, 여기에서 세계 도처로 그 악한 영향을 퍼뜨리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또 다시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에게서 배반당하고, 잔혹한 박해를 받으며 처형대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성 베드로 대성전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셀카를 찍는 모습이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죽음과 거룩함 앞에서조차 사람들은 기도와 경외보다 기록과 공유, 그리고 화면 속 자기 모습을 먼저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묵상 에세이 2부> '✦ 진리를 잃어버린 시대, 이성의 절대화와 상대주의의 독재' 중
<디지털 시대와 상대주의의 구조적 확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디지털 혁명의 시작과도 맞물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에세이 「묵시록의 우상, 텔레비전을 넘어 스마트폰과 AI로」에서 살펴본 것처럼, 1998년을 전후하여 인터넷과 검색 기술은 인간의 정보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의 공통된 정보 환경 안에서 동일한 현실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각자는 자신이 선택한 정보에 주로 노출되고, 알고리즘은 개인의 관심과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정보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그 결과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정보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407번 「그 짐승의 숫자인 666」 메시지에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미리 예고하셨습니다.
(407. 그 짐승의 숫자인 666,16)
"666은 그 세 배의 수로 서기 1998년을 가리킨다. 역사상 이 시기에 프리메이슨은 교회 프리메이슨의 협력으로 그 자체의 큰 계획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터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대신하는 우상, 즉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그리하여, '첫째 짐승'을 위해 세워진 그 우상을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경배하게 할 것이고, 물건을 사거나 팔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낙인을 받게 할 것이니(묵시13,17 참조), 그것은 바로 거짓그리스도의 낙인이다. 그러기에 너희는 정화와 대환난과 배교의 극점에 이르른 것이다. 배교가 일반화될 터인즉, 거의 모든 사람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SNS, 그리고 인공지능은 이러한 환경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같은 사건을 접하면서도 서로 다른 정보와 해석에 노출되고, 점차 공통된 현실 인식을 공유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은 개인의 관심과 성향에 맞춘 정보와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정보 환경이 개인의 판단을 끊임없이 강화하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는 데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차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보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참인가?"라는 질문이 점차 "나에게는 무엇이 맞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이미 확산되고 있던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더욱 빠르게 증폭시키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안에는 거짓 신앙과 참된 신앙 사이의 분리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거짓 신앙은 온라인을 통해 퍼지고, 나아가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따르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참 신앙은 온라인으로 퍼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만난 그 순간을 어떻게 전달하겠습니까? 삶으로 전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2022년 어느 본당에서 한 사제의 강론을 들으며 깊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제는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 죄를 지을 시간조차 없다."고 말하며, 고해성사를 보러 왔지만 죄가 없더라도 신부와 상담하거나 건의사항을 이야기해도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죄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성전 안에 가득하게 된다면, 하느님께 대한 참된 경외심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거룩한 예배의 본질이 훼손되고, 나아가 그것이 폐지되는 상황에 이르더라도 많은 사람은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채 세상의 방식과 온라인을 통한 신앙생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배교의 물결은 이미 교회 안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370. 대환난,4)
"우선, 교회 전체에 확산되고 있는 대대적인 배교현상이다. 이것은 신앙결핍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바로 '목자들' 사이에도 넘쳐흐르는 조류이다. '사탄'이 교활한 속임수를 써서 수많은 이들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를 떠나 새로운 신학의 허구적 학설을 추종하게 하고, 악과 죄를 참된 선이기나 한듯이 추구하여 거기서 쾌락을 취하게 함으로써, 그러한 대대적 배교의 물결을 도처로 확산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교가 더욱 깊어질 때, 성모님께서는 마침내 그리스도의 적의 영을 따르는 자가 성전 안에 등장하여 하느님께 드려지는 매일의 제사인 거룩한 미사를 폐지하는 흉측한 독성죄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485. 마지막 때,20-21)
"매일의 제사는 바로,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모든 곳에서 주님께 바쳐지는 순수한 봉헌식인 '거룩한 미사'이다.
미사성제는 예수께서 '칼바리아'에서 이루신 희생 제사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차 열교(裂敎)의 교리를 받아들인 자들이 미사는 희생 제사가 아니라 다만 거룩한 만찬, 곧 예수께서 최후 만찬 석상에서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하여 '거룩한 미사' 집전이 폐지될 것이다. 이처럼 매일의 제사를 폐지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적'에 의해 이루어질 흉측한 독성죄이다. 이 일이 약 삼년 반 동안, 즉, 천이백구십 일 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참 신앙에 충실히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죄와 세속의 애착을 벗어 버리고,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 곧 하늘의 문을 통하여 천상 정원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순결"을 특별히 소중히 여기시며, 마음이 깨끗한 이들에게 당신 성심의 신비와 자비로우신 사랑의 계획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그 천상 정원 안에서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믿음과 희망과 사랑, 특히 순결과 성덕의 길로 이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님 생애와 구원 복음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고, 삼위일체 하느님과 더욱 깊은 일치를 이루도록 양육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순결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준비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21. 나는 그들을 구원하고 싶다,19.21)
"그러므로 '나의 사제들'은 무엇보다 순결해야 한다. 지극히 순결해야 한다! 나의 티없는 망토로 내가 손수 그들을 다시 감싸 주리라. 그리하여, 새 사람, 올바르고 티없는 새 사제로 만들어 주겠다."
"내 '사제 운동'이 이 세상에 순결의 향기를 다시 가져오기 바란다. 오직 그 향기의 그윽한 파도를 타고서만, 내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의 임금이 되시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305. 나의 순결과 너희의 순결,20-21)
"오늘날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의 삶이 이 불순결로 말미암아 메말라감을 볼 때, 더욱이 이것이 가공할 암처럼 어디에나 번져가고 있음을 볼 때, 이 천상 엄마의 비통함이 얼마나 크겠느냐! 이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의 계획을 더 이상 알아들을 수 없을 뿐더러, 이 천상 엄마의 음성에 유순히 귀를 기울일 만큼 단순하고 작은 사람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오직 순결한 사람들에게만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드러난다."
(375. 내 모정이 담긴 메시지,5)
"내 마음은 너희 조국이 처한 큰 위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폭력과 증오, 사악과 부도덕이 확산되고 있으니 말이다. 잘못 이해된 자유의 이름으로, 오늘날 가장 심각한 도덕적 문란마저 묵인 내지 정당화되고 있고, 대중 전달 매체를 통해 불순결이 찬양을 받으며 두루 퍼지고 있으니, 어둠의 장막이 내리덮여 허다한 내 자녀들의 영혼을 눈멀게 하고 있는 것이다."
(589. 원죄 없는 잉태,4)
"보아라, 온 세상이 이제 얼마나 광대한 사막이 되었는지를! 이 사막에 죄와 이기심, 교만과 증오, 쾌락과 불순결이라는 사악한 잡초가 수없이 자라고 있다. 특히 불순결이 갖가지 선전매체에 의해 격찬을 받으며 확산되고 있으니, 어린이들의 천진함부터 덫에 걸리기 시작하여 결국 젊은이들의 순결과 가정생활의 정숙이 파괴되고 있다. 정욕의 마귀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 군림하여, 지상의 모든 민족을 쾌락의 잔으로 유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89. 원죄 없는 잉태,5-6)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이다. 내 모든 자녀들을 오관 극기의 길, 기도의 길, 순결과 사랑의 길로 이끄는 것이 나의 모성적 역할이다. 너희가 이와 같이 할 때라야 내 아들 예수님의 사랑의 신비를 꿰뚫어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순결을 특히 소중히 여기신다. 그래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만 당신 성심의 신비를 드러내신다. 또한 마음이 깨끗한 어린이들에게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의 계획을 드러내시니, 이 사랑이 만물을 깨끗하게 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예수님 생애의 신비와 그 구원 복음의 신비를 깊이 깨달으려면, 너희는 마땅히 순결의 덕을 닦아야 한다."
오늘도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의 티없으신 성심 안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384. 엄청난 배교,9)
"이 시대의 '가톨릭 교회'에는 남아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와 '복음'과 복음의 모든 '진리'에 충실하리라. 그 소수의 사람들은 모두 내 티없는 성심 깊숙이서 보호를 받으며 작은 양떼([2백주년] 성서 루가 12,32)를 이루리라. 이 '작은 양떼'를 이룰 주교, 사제, 수도자, 신자들은 교황과 굳게 일치하여 끊임없는 기도와 항구한 희생과 전적인 봉헌을 실행하며 다 함께 '내 티없는 성심의 다락방'에 모일 것이고, 그러한 고통의 길을 통해 내 성자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준비하리라."
(520. 묵시록적 메시지,7)
"상처 입고 어둠에 싸여 있는 교회, 타격을 받고 배반당하고 있는 교회에도 나는 내 티 없는 성심으로부터 사랑과 빛의 광선이 뻗어 내리게 한다. 엄청난 배교 사태가 도처에 확산되어 무법자(2테살 2,3)가 교회 내부에 들어올 때, 그리하여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마태 24,15; 다니 9,27;11,31;12,11)을 세움으로써 가공할 독성죄의 절정에 이를 때, 그때 나는, 고통의 감수와 기도와 희망 속에서 내 성자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남아 있는 소수의 충실한 이들을, 내 티 없는 성심에 모아들일 작정이다."
(558. 나의 계획,8)
"나의 계획은 내 모든 자녀들에게 믿음의 길, 희망의 길, 사랑의 길, 순결의 길, 선의 길, 성화의 길을 가르치는 데 있다. 이와 같이, 배교와 타락의 거센 물결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와 ‘복음’과 ‘교회’에 충실히 남을 소수의 사람들을, 내 ‘티 없는 성심의 정원’에서 준비시키고 있다.
예수께서는, 너희 ‘천상 엄마의 티 없는 성심’이 품어 안고 있는 이 ‘작은 양 떼’(루카 12,32)로써, 이 세상에 당신의 영광스러운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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