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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생활묵상 : 신앙으로 힘을 주시는 형제님을 생각하면서.....

191080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6-08-08

 

 

신앙의 힘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마치 신앙이 있기 때문에 신앙의 힘으로 견디어낸다든지 아니면 극복을 할 때 흔히 표현하기도 합니다. 신앙수기공모전에도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때 신앙은 자신이 가지는 신앙의 의미를 재해석해야 합니다. 신앙은 오로지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앙은 남의 눈치를 살펴서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그런 의미의 신앙이 아니라 다른 신앙인의 격려라든지 응원의 힘으로 나약한 신앙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핍박을 해도 아주 극소수이지만 응원하고 믿어주는 형제자매들이 있다면 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비난을 하고 손가락질을 해도 그게 어떤 유언비어로 인해 그렇다고 해도 절대 그 사람은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신앙 안에서도 잘 살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걸로 서로 맺어진 영적인 형제자매이지만 실상 인간적인 시각으로 그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아마 극히 드물것입니다. 마치 교과서적인 내용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을 뛰어넘어서 만약 신앙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 차례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름만 신자라는 꼬리를 달고 있을 뿐 그 꼬리로 신앙인이라고 불리어질 수 있을 뿐이지 진정한 신앙인이 되려면 그저 신앙을 가진 것에 만족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신앙 안에서 신앙을 모토로 제대로 신앙인인지를 항상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 과정이 없다면 그는 명목상 그저 허수의 신앙인에 불과할 뿐입니다. 저는 오늘 이와 같은 묵상을 태평양을 건너 살고 계신 최 마르코 형제님에 대해 묵상을 하면서 이런 묵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형제님은 어떤 경우에는 제 글에 긴 답글을 올려주시고 코멘트를 해 주십니다. 그 코멘트를 읽으면서 마음은 길게 저 역시 코멘트를 해 드리고 싶은데 개인 사정으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서 또 시간적인 이유로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그 코멘트를 통해 또 제가 묵상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다른 시각으로 묵상을 해보곤 합니다. 바로 이게 상생의 원리인 듯합니다. 형제님께서는 제가 표현한 걸 바탕으로 해서 다시 묵상을 하시고 또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해 주신 내용으로 저 역시 다시 한 번 더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묵상을 하게 되면 좀 더 사고가 명확해지기도 합니다. 마치 이런 효과를 신앙에 적용하면 아주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독불장군처럼 해서는 제대로 하느님께 갈 수 없습니다. 

 

신앙은 함께 공동체를 통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공동체라고 해서 무리를 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당 공동체만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최소한의 둘 이상만 되어도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구성이 되어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주시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라고 해서 규모가 거대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소규모의 그룹이라도 그 그룹 자체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름값을 톡톡히 발휘하면 그 공동체는 위대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태평양 너머 미국에 계신 최 마르코 형제님과 굿뉴스에서 비록 글로 서로 소통을 하지만 이 소통은 저희 둘만의 소통의 장으로 되는 게 아닐 것입니다. 직접 소통하는 주체는 저희가 되지만 그런 소통의 장을 간접적으로 다시 소통의 장 속으로 들어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바로 그분들은 저희와 직접 소통은 하지 않으시지만 간접적으로 저희가 소통하는 내용을 지켜보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건 단순히 방관하는 게 아닙니다. 이를 통해서 서로 교감을 할 수도 있고 때로는 교감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두 사람이 소통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소통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건 소규모의 공동체의 의미보다도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마치 새로운 여론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정말 이건 건전한 또 다른 신앙으로 새로운 만남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를 통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면 그 모습이야말로 예수님이 보시면 정말 기뻐하시지 않을까 하는 묵상을 해봅니다. 이건 두 사람만이 누리는 효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건 달리 생각해보면 아주 많은 분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쪽이 미비한 생각을 했을 때 다른 한쪽이 그냥 지적하듯이 보완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점에서는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하면서 예를 다해서 표현한다면 그 예는 겸손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이 될 거라고 확신을 합니다. 이런 모습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지 서로 반목을 하려고 하고 세상처럼 누군가를 짖밟고 신앙 안에서 경쟁을 하려는 사람만큼 그 사람처럼 불쌍한 신앙인이 있을까도 싶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로 인해서 모든 사람은 아니더라도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만이라도 정말 제대로 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예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마르코 형제님, 항상 힘과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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