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9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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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65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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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행을 다녀오면 ‘시차’라는 후유증이 있기도 합니다. 밤을 새워 놀았으면 다음 날 ‘피곤’이라는 후유증도 있습니다. 포트워스 신부님과 산타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2시간 운전하는 여행이었고, ‘어도비’라는 독특한 양식의 건물을 보았습니다. 신부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아이스박스에 음식과 술을 가져가서 경비도 절약하였습니다. 전체 경비가 600불 정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후유증이 있었습니다. 가는 날과 오는 날 경찰에게 ‘티켓’을 받았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범칙금의 반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하니, 나누어 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2주 후에 신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범칙금 고지서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반을 주기로 해서 고맙다는 문자였습니다. 그런데 벌금의 액수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여행 경비의 3배인 1,800불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사이좋게 반씩 나누어서 냈습니다. 생각보다 큰 후유증이었습니다.
21년 전의 일입니다. 저는 당시 사목국에서 교육 담당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대방동 성당에서 구역장, 반장 교육이 있었습니다. 제 강의 시간은 오후 4시였지만, 미리 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2시에 강의하러 오실 신부님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저는 몸이 피곤해서 잠시 불가마 사우나에 가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우나에서 방송이 나왔습니다. “손님 중에 조재형 씨 계시면 나와 주십시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사우나에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2시에 오기로 한 신부님이 길이 막혀서 늦는다고 연락하셨습니다. 봉사자는 제가 성당에 와 있는 것을 알고, 그러면 제가 먼저 강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모상 앞에도 제가 없고, 성체 조배실에도 없고, 사제관에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불가마 사우나에 연락했고, 저는 정말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성당으로 돌아와 먼저 강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늘 긴장하고 불안하게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내가 해야 할 일을 기억하며, 부르심이 있을 때 응답할 준비를 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날 저는 잠시 쉬고 있었지만, 불러 주는 소리를 듣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신앙인도 그렇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다시 복음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셨습니다. “주님의 영이 나에게 내리셨다.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묶인 이를 풀어주며, 눈먼 이를 다시 보게 하고, 억눌린 이를 자유롭게 하라고 나를 보내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말씀만 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삶으로 이루신 분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마귀 들린 이를 해방해 주셨고, 병든 이를 고쳐 주셨으며, 죄인에게 용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명의 물을 주셨습니다. 베짜타 못가에서 38년 동안 기다리던 사람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있던 여인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셨고, 중풍 병자를 일으켜 세우셨으며, 눈먼 사람에게 빛을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화려한 궁전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 곁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 아픈 이, 외로운 이, 죄인, 마귀 들린 이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이었고, 이것이 예수님의 길이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믿음에 대한 아름다운 글을 남겼습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그리고 더 깊이 묻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있는가 믿음은 말로만 하는 고백이 아닙니다. 믿음은 누군가가 나에게 마음을 맡길 수 있는 삶입니다. 믿음은 어려운 순간에도 끝까지 지켜주는 마음입니다. 믿음은 세상의 유혹 앞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는 내면의 힘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보장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셨기 때문에 “예”라고 대답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성모님의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믿음은
하느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나를 믿고 맡겨 주셨기 때문에 기쁘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도 믿음입니다. 봉사자가 공동체를 섬기는 것도 믿음입니다. 사제가 말씀을 준비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신자가 아픈 이웃을 찾아가고, 외로운 이를 위로하고, 어려운 이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을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믿음은 가난한 이에게 빵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외로운 이에게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병든 이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믿음은 용서받지 못한 이에게 자비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성당 안에서만 피어나는 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가정에서, 일터에서, 병원에서, 길 위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피어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 믿음의 꽃은 피어있습니까 내 믿음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있습니까 내 믿음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게으름과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시들어 있지는 않습니까
산타페, 곧 거룩한 믿음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삶도 거룩한 믿음의 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믿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르실 때,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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