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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8월 4일 (화)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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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190953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8-03

서울 대교구 사제 모임 마지막 날에는 콜롬비아 교황 대사관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콜롬비아 교황 대사관에는 한국인 몬시뇰이 계셨습니다. 몬시뇰은 저희가 교황 대사관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고, 미사 후에는 교황 대사관에 대해서도 몇 가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보통 대사는 그 나라를 대표합니다. 미국 대사, 한국 대사, 영국 대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교황청 대사를 흔히 바티칸 대사라고 하지 않고 교황 대사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교황님께서 단순히 바티칸이라는 작은 나라를 대표하는 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대표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교황의 자리는 인간의 능력이나 정치적인 힘으로 세워진 자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맡기신 사명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황님께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 교황님 개인의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리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일치와 친교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콜롬비아 교황 대사관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저는 다시 한번 교회가 얼마나 크고, 깊고, 넓은 신앙의 집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사제들이 남미 콜롬비아에서, 교황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대사관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은총이었습니다.

 

몬시뇰은 교황 대사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외교 의전의 선임 자리를 맡는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교황 대사는 특정한 이념이나 체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각국의 대사는 자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지만, 교황 대사는 교회의 일치, 인간의 존엄, 평화와 화해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사제의 자리도 생각했습니다. 사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제는 어느 한 편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는 바로 그런 사제의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 주신 분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방향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배가 빠르고 튼튼해도 목적지를 잃어버리면 표류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때로는 멈추어 서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 이 물음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삶은 바빠질 수는 있지만 깊어지지는 않습니다. 많은 것을 이룰 수는 있지만 평화를 얻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약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길을 아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멈춤이 아니라, 하느님께 방향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진 것은 단지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적이 강해서 무너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마음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하느님을 떠난 마음, 우상에 기울어진 마음, 감사와 신뢰를 잃어버린 마음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심판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하느님께서는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상처 입은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벌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우리 마음의 자리를 말씀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우리는 흔히 외부의 환경 때문에 내가 흔들린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고, 상황이 나를 무너지게 하고, 세상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외부의 어려움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보면, 나를 흔드는 것은 내 마음 안의 시기와 질투, 분노와 미움, 근심과 걱정일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어두우면 좋은 음식도 기쁨이 되지 못하고, 아름다운 경치도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으면, 고통의 바다에서도 우리는 침몰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머무르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시 파견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미사에서 은총을 받고, 기도 안에서 힘을 얻고, 다시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사제의 길이고, 모든 신앙인의 길입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처럼 우리도 하느님 앞에 머무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말보다 기도로, 판단보다 자비로, 자기 영광보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이 돌아와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화려한 업적만이 아닙니다. 깨어 있는 마음입니다. 충실한 마음입니다. 주님께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입니다.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동안, 우리의 배가 주님께 방향을 맞추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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