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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하느님의 질투와 여자의 질투 뭔 차이가 있을까?

190908 강만연 [fisherpeter] 2026-07-31

 

번역이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저 역시 번역을 많이 해봤지만 머리를 쥐어짜야 할 정도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나 내용은 어떤 느낌인지 그냥 이해 자체는 확실하게 할 수 있고 느낌 또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만약 우리말로 번역을 해서 누군가에게 그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한다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 느낌 그 뉘앙스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긴 문장으로 표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느낌은 잘 전달될 수 있는데 만약 그게 성경이라면 마음에 하느님 말씀으로 확 와 닿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거룩하기 때문에 그 거룩한 말씀이 우리의 육비에 새겨지기 위해서는 그래야 합니다. 이런 딜레마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직역을 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설령 이런 난맥이 있다고 해도 그 정도가 너무 벗어나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됐을 경우 완전히 이해를 잘못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모세오경을 비롯하여 하느님을 표현할 때 하느님께서 가지고 계신 속성 가운데 하나를 표현하는 것 중에 질투가 나옵니다. 이건 개신교나 천주교나 둘 다 번역 이전에 이미 성경의 의미나 내용을 보면 절대 한국어로 의미 '질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번역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몇 년 전에 개신교 신학자와 이 부분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개신교 싸이트에서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한 게 있어서 저는 가톨릭 신자라는 걸 밝히고 왜 그렇게 번역을 하면 안 되는지 전혀 반박을 하지 못하게끔 설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언어적인 논리와 성경지식으로 승부를 본 것입니다. 저 역시 그 개신교 신학자와 열띤 토론을 했을 때 이미 저도 한 때 개신교 신자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했습니다. 이건 개신교와 천주교의 양 종교의 교리와 종교의 신념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걸 밝혔습니다. 사실 지금은 개신교에서도 이 표현이 번역상 명백한 오류하는 걸 자인하고 있습니다. 인정은 하긴 하지만 수정은 안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천주교는 아마 둘 다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와 관련해서 구약을 전공한 신부님을 수소문해서 메일로 여쭤봤는데 몇 년째 답장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최고의 권위자인 신부님께도 여쭤봤는데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오늘 왜 이런 무거운 주제를 말씀드리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인간의 질투에 대해 요즘 많이 묵상하는 게 있습니다. 지금 교제하는 자매 때문에 더더욱 이 묵상을 많이 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신학적인 해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과거 고민했던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는 제가 이런 묵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만약 번역이 잘못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럼 이렇게 표현해도 무방할 거란 생각입니다. 그럼 하느님도 삐지는 하느님이신가 하고 말입니다. 재밌는 내용입니다. 

 

사실 어제 올린 묵상글 제목을 보면 ' 사랑하지 않으면 삐지지도 않아'입니다. 이 제목을 바탕으로 해서 지금 교제하는 자매랑 사이에서 일어난 일로 묵상한 걸 공유하면 유익한 내용이 있어서 그렇게 제목을 정했는데 그만 잠시 삼천포로 샜던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내용에 대해 언급을 조금 하겠습니다. 자매는 자주 사랑한다고 합니다. 또한 여자인지라 꼭 여자라서라기보다는 어리고 해서도 그렇지만 잘 삐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삐질 일이 있어서 삐진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전혀 그럴 일이 아닌데도 그럴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참 난감합니다. 그럴 때 제가 그냥 한마디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잘 삐지는데 정말 사랑하는 게 맞냐고 말입니다. 그럼 하는 소리가 정말 재밌습니다. "사랑하니까 삐지지"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잘 되지 않습니다. 지금 문자가 왔습니다. 호칭을 재밌게 표현을 하는군요. 장난으로 하는데 웃음이 나옵니다. 뭘 부탁을 했는데 보통 아빠라고 하는데 지금은 서방님이라고 하는군요. 10년 전에 여학생들이 사용하는 표현인 걸로 아는데 오글거리기도 합니다. 오늘도 학원을 오기 전에 약간 삐지는 것까지는 아닌데 좀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게 남자와 여자랑 차이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랑하면 삐지면 안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감정은 도무지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해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자가 된다면 이해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해를 하는 모드로 변해서 묵상을 해본 것입니다. 그럼 이 자매의 말은 사랑하지 않으면 삐질래야 삐지고 싶지도 않을 거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삐지는 것도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인지 그렇게 묵상을 해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서두에 말씀드린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번역의 오류라고 한 질투에 대해 다시 새로운 관점으로 묵상을 해봅니다. 

 

교제하는 자매를 통해 이런 묵상을 해봅니다. 만약 그 번역이 전혀 오류가 없다는 전제에서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은 그만큼 우리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다는 역설일 거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낮에 집에서 학원으로 올 때 자매가 한 말이 있었습니다. 점심 때 제가 자매는 토요일과 주일은 그냥 집에서 같이 있었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한 다음에 저는 가능하면 학원에서 교재 연구도 하는 게 좋다고 이야기만 하고 말았습니다. 근데 집을 나올 때 표정이 시무룩해서 왜 그런 표정을 하니 물어보니까 주말에는 좀 더 많은 시간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런 맘을 몰라주니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니 또 제 맘이 짠한 것이었습니다. 그 맘 몰라줘서 미안하고 주말에 집에 있을 테니 걱정말라고 말을 하고 저는 학원으로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맘이 풀렸는지 잘 사용하지도 않는 호칭을 하며 전혀 그런 일 없다는 듯이 뭔가 부탁하는 내용으로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이게 여자랑 남자랑 차이인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 말씀 '하느님은 질투하시는 하느님' 이때 이 질투를 마치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받고 싶은 사랑을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느님의 질투랑 인간의 질투는 분명 확실히 다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이해를 한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무서운 하느님의 모습으로만 기억을 하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그게 장애가 될 여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그걸 절대 원하시지를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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