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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8월 1일 (토)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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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190902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7-31

제가 성당에서 구역장 직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급적이면 성당 활동을하지 않습니다. 아니 봉사는 해도 같이 어울리는 것은 잘 하려 하지 않습니다. 두곳의 재속회를 참여를 하였고 나중에 그곳을 참여 하면서 나름 깨달은 것은 그곳의 속성은 어떤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참여를 하였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처음 참여한 재속회에서 구역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어느 형제님인데 그분은 아들이 신부님입니다. 그런데 저를 유심히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상처 받을 것 같은데 .. 이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무슨말이지?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라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재속회도 갔는데 그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첫번째 신부님 아버지 형제님의 말씀은 정확했습니다. 상처 많이 받을 것 같다. 이 말입니다. 영적인 멘토 신부님 말씀도 그곳에 가지 마라 입니다. 왜요? 라는 말씀에 신부님 말씀은 단호하셨습니다. 교만해!! 사랑스런 스승과 같은 분이고 저의 아버지 말씀으로는 할아버지 신부님입니다. 영적인 해안이 있는 분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제가 볼멘 소리를 하는 것도 영적으로 해안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영적으로 해안이 없어서 수없이 부딛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신부님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는데 그분은 ? 영적인 해안이 있으시니 모든 삶과 같이 교감을 하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해안이 없으면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헛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서 당신의 하느님 나라 일을 보고 계십니다.그런데 안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못마땅해 합니다. 그런데 안다는 것이 ?? 저도 이번에 재속회를 통해서 본 것은 안다는 것? 영적인 해안이 있는가? 정화, 조명, 일치의 삶과 완덕의 7단계를 삶의 모토로 하는 삶이 그곳의 삶입니다. 아니 그곳의 수도자들의 삶입니다. 그럼 안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데? 그곳 참사회 사람들이 저를 놓고 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 신부님과 수사님과의 대화 안에서? 안다? 제 선종하신 영적 아버지는 34년 같이 생활 했습니다. 아니 저에 대해서는 다 알고 계신분이셨습니다. 영적으로 세상사적으로 그리고 아버지 어머님 모든 분들의 삶과 재산 정도, 우리 집의 숫 가락 젓가락 숫자까지도 알고 계신 신부님이셨는데 한번도 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한번도 목소리를 높이신 적이 없으신 분입니다. 34년이라는 시간 동안 신부님과 만남에서 영적인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부님으로 부터 볼맨 소리를 듣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잘했다기 보다는 영적인 해안으로 저를 보신 분이라 그런 불상사가 없었습니다. 신부님도 늘 하신 말씀과 행동은 사랑입니다. 영적인 고수들의 공통점은 사랑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에 적절한 사랑의 결과를 내어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주변 고향 사람들은 영적인 장님들입니다. 그런데 그 장님들이 예수님에게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댓구를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십니다. 목적은 주변과의 불화를 원치 않으셨고 영적인 해안이 있으신 분이라 그 자리를 피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아무리 차이가 나도 수용력이 없으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수 없는데 그 자리에서 무엇을 이야기 한들 통하겠나요? 정화, 조명, 일치와 완덕의 7단계 안에서 나의 위치를 아는 사람들은 자신을 탓합니다. 타인에게 시선이 가지 않습니다. 3년 전에 저는 묵상 글 안에서 저의 벽을 보았습니다. 능동적인 앎의 단계 안에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주일 미사를 참여를 하면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의탁에 주안점이 있습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말씀에 내어 맡김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의 정수를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일치의 삶입니다. 그럿게 일치의 삶을 살아가는 영적 고수 신부님의 삶은 사랑입니다. 우선 사람을 살리는 삶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살리시는 분입니다. 살린다는 것이 죽음을 죽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입니다. 구원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하고 그 가는 길이 완덕의 7단계로 가이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정화 조명 일치라는 길로 주어진 길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달려 갔던 저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삶은 수련의 연속입니다. 어제 영적 멘토 신부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삶은 성화의 여정이지 늙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화입니다. 성화? 그런데 잘 깨달아야 하는 것이 성화는 책상 위에서 입으로 chating하는 것이 아닙니다. 묵묵히 삶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나는 없어지고 예수님이 살아가시는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화는 chating으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온전한 자기 비움이 있는 곳에서 성화가 시작됩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시고 상담하시는 신부님은 내 안에 내것이 없어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경청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애타는 삶에 경청하시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시고 같이 공감해 주시고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 있기에 그 많은 사람들의 상담을 들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듣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도 여러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특히나 신앙 안에서 말은 논쟁의 것이 아니라 내어줌의 언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어 줌의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던 그 언어입니다. 내어줌의 삶이 사랑입니다. 인류를 구원으로 넘어가게 하신 행동이 빠스카 입니다. 당신의 수고 수난으로 우리는 부활을 볼 수 있었고 승천을 예수님을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고 수난으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과 승천이 결국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나도 예수님을 믿음이 있어야 그 안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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