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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7월 31일 (금)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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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190888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7-30

영화 반지의 제왕은 세 가지 큰 흐름으로 전개됩니다. ‘절대 반지’, ‘두 개의 탑’, ‘왕의 귀환입니다. 절대 반지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욕망과 집착을 보여 줍니다. 두 개의 탑은 세상 안에 서로 다른 두 길, 두 깃발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왕의 귀환은 참된 왕이신 분께서 돌아오시고, 무너진 질서가 회복되는 희망을 보여 줍니다. 이 작품을 반드시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직접 연결할 수는 없겠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놀랍도록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영신수련의 중심에는 원리와 기초’, ‘두 개의 깃발’, ‘세 가지 유형의 사람’, ‘겸손의 세 단계가 있습니다. 오늘 이냐시오 성인의 축일을 지내며, 영화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영적 싸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먼저 절대 반지영신수련원리와 기초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공경하고 섬기며, 그로써 자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목적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한에서 사용해야 하고, 방해가 된다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냐시오 성인은 건강보다 병을, 부유함보다 가난함을, 명예보다 모욕을, 장수보다 단명을 무조건 피하거나 바라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더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하라고 가르칩니다. 절대 반지는 힘과 권력과 성공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붙잡는 순간 사람은 자유를 잃고, 마음은 어두워집니다. 우리 삶에도 절대 반지가 있습니다. , 명예, 권력, 인정, 자존심, 원망, 분노, 집착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 나아가게 한다면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나를 지배한다면 우상이 됩니다.

 

둘째, ‘두 개의 탑은 이냐시오 성인이 말한 두 개의 깃발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깃발이고, 다른 하나는 악의 깃발입니다. 악의 깃발은 먼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사람을 유혹합니다. 그다음에는 헛된 명예로 이끌고, 마침내 교만에 빠지게 합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깃발은 가난과 모욕과 겸손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것은 비참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의 평가에 묶이지 않는 자유,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 낮은 자리에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도 이 두 깃발 앞에 섭니다. 어떤 이는 반지를 통해 권력을 얻으려 하고, 어떤 이는 반지를 없애기 위해 자기 길을 걷습니다. 우리도 매일 두 깃발 앞에 섭니다. 편한 길과 옳은 길, 이익의 길과 사랑의 길, 나를 높이는 길과 하느님을 드러내는 길 앞에서 선택합니다.

 

셋째, ‘영신수련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나옵니다. 첫째 사람은 하느님께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습니다. 둘째 사람은 하느님께 가고 싶어 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가려고 합니다. 셋째 사람은 모든 것을 하느님 손에 맡기고,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이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영화 속에서도 반지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망설이는 사람이 있고, 반지를 이용해서 선을 이루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길은 반지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지를 버리는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느님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나의 뜻, 나의 방식, 나의 자존심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냐시오 성인은 묻습니다. “나는 정말 하느님의 뜻을 원하는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내 뜻을 들어주시기를 원하는가

 

넷째, ‘왕의 귀환은 겸손의 세 단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 겸손은 큰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 겸손은 부유함과 가난함, 건강과 병, 명예와 모욕 사이에서 마음의 자유를 가지는 것입니다. 셋째 겸손은 그리스도를 더 닮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가난하고 낮아지고 모욕받는 길까지도 선택하는 것입니다. 왕의 귀환은 힘으로 군림하는 왕의 귀환이 아니라, 고난을 지나 생명을 회복하는 왕의 귀환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참된 왕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방식으로 왕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낮아지셨고, 섬기셨고,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분의 왕권은 지배가 아니라 사랑이고, 그분의 승리는 폭력이 아니라 십자가이며, 그분의 영광은 부활입니다.

 

오늘 이냐시오 성인의 축일을 지내며, 우리 마음 안의 절대 반지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느님보다 더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깃발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냐시오 성인은 우리에게 거창한 신비를 말하기 전에 아주 분명한 식별을 가르칩니다.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이 되는가 나를 더 자유롭게 하는가 나를 더 겸손하게 하는가 나를 더 사랑하게 하는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면, 우리는 우리 안의 절대 반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총으로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프로도 혼자서는 반지를 없앨 수 없었습니다. 샘이 함께했고, 공동체가 함께했으며, 보이지 않는 섭리의 손길이 함께했습니다. 우리도 혼자서는 욕망과 집착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가 필요하고, 말씀의 빛이 필요하고, 공동체의 동행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주님께서 함께하셔야 합니다.

 

오늘 이냐시오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우리도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붙잡고 있는 절대 반지를 보게 하소서. 주님, 세상의 깃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서게 하소서. 주님, 모든 선택에서 오직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찾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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