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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7월 29일 (수)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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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190851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7-28

세상에는 어느 순간을 지나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그런 지점을 임계점이라고 합니다. 물은 100도가 되면 끓기 시작합니다. 99도까지는 뜨거운 물이지만, 100도가 되는 순간 물은 수증기로 변합니다. 작은 변화가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상태로 바뀌는 것입니다. 또 요즘 인공지능 시대에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특이점입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의 예측과 통제를 넘어서는 지점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도구를 만들지만, 어느 순간 도구가 사람의 삶과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수학에는 변곡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프가 내려가다가 올라가고, 올라가다가 내려가는 방향이 바뀌는 지점입니다. 인생에도 그런 지점이 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죄에서 회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방향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임계점이 있습니다. 분노와 욕망의 임계점입니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향한 시기와 분노가 마음속에 쌓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지만,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카인은 분노의 임계점을 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형제는 경쟁자가 되었고, 들판은 살인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다윗도 욕망의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옥상에서 바라본 한 여인을 향한 욕망을 멈추지 못했고, 결국 간음과 살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유다는 탐욕의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은전 서른 닢 앞에서 스승을 팔았습니다. 분노와 욕망은 처음에는 작은 불씨처럼 시작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성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마음을 태우는 불길이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분노와 욕망의 온도를 살펴야 합니다. 마음이 끓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말이 칼이 되기 전에 침묵해야 합니다. 욕망이 죄가 되기 전에 멈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는 아름다운 특이점도 있습니다. 사랑과 겸손의 특이점입니다. 인간의 계산을 넘어서는 사랑, 인간의 자존심을 넘어서는 겸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사랑과 겸손의 특이점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과 계산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힘과 권력을 뒤집는 겸손입니다. 베드로도 그 특이점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했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베드로는 자신의 실패보다 더 큰 주님의 사랑을 만났고, 그 사랑 안에서 다시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실패를 넘어섭니다. 겸손은 인간의 교만을 무너뜨립니다. 은총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신앙 안에는 또한 회개와 변신의 변곡점이 있습니다.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에서 자랐지만, 광야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의 인생은 변곡점을 맞이했습니다. 도망자였던 모세가 해방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이 사울의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박해자 사울은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가 되었습니다.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도 예수님의 나를 따라라.”라는 한마디에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세리 자캐오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변신은 겉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변신은 마음의 중심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도 모두 신앙의 임계점, 특이점, 변곡점을 보여 줍니다. 마르타는 처음에는 분주함의 임계점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려는 마음은 좋았지만, 그 마음이 어느 순간 불평이 되었습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있으십니까봉사도 기도와 사랑을 잃으면 불평이 될 수 있습니다. 헌신도 겸손을 잃으면 원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라자로가 죽었을 때 마르타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분주함의 여인이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마르타의 변곡점입니다.

 

마리아는 사랑의 특이점을 보여 줍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마리아는 나중에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사랑은 계산을 넘어섭니다. 사랑은 효율을 넘어섭니다. 사랑은 손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서 사랑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특이점입니다.

 

라자로는 죽음과 생명의 변곡점을 보여 줍니다.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덤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죽음의 침묵이 생명의 말씀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무덤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라자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너무 늦은 시간이 없습니다. 은총 앞에서는 닫힌 무덤도 열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죽음의 자리에서도 다시 걸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임계점이 있습니다. 분노가 쌓이고, 욕심이 쌓이고, 미움이 쌓이면 어느 순간 말과 행동으로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어야 합니다. 기도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는 은총입니다. 고백성사는 죄의 임계점을 넘기 전에 하느님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침묵은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마음을 지키는 울타리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특이점이 있습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내가 나를 넘어섭니다. 겸손이 깊어지면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이 중심이 됩니다. 용서가 깊어지면 상처가 은총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변곡점이 있습니다. 회개하는 순간, 말씀을 듣는 순간,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마르타처럼 분주함에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계산에서 사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라자로처럼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신앙은 무너지지 않는 삶을 약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무너진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은총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분노와 욕망의 임계점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사랑과 겸손의 특이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회개와 변신의 변곡점에서 주님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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