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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7월 29일 (수)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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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19084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7-28

김건태 신부님_세상 종말: 의인과 악인의 운명

 

오늘 복음 말씀은, 제자들이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으로 보아, 앞선 ‘가라지의 비유’를(13,24-30) 전제로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보다 더 앞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13,1-9) 이 비유에 대한 ‘설명’과(13,18-23) 비교해 볼 때, 그 연관성은 훨씬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라지의 비유’에서는 가르침의 대상이 ‘군중’으로 언급되며, 밭 주인의 신중함과 인내심이 돋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에서는 대상이 ‘제자들’에게 국한되며, 주인의 그러한 모습이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유에 대한 단순한 설명을 뛰어넘어, 제자들을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가르침, 곧 ‘세상 종말’에 대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임을 밝히십니다. 씨는 ‘좋은 씨’이며, 씨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 곧 당신 자신을 가리킨다는 사실에서는 다른 비유 말씀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나, ‘씨’가 ‘하느님의 말씀’ 또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13,1-9와 24-30 참조), ‘하늘 나라의 자녀들’로 명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의 차이점으로 짚어볼 수는 있으나,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늘 나라의 자녀들’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의인들”로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사람들입니다.

 

이어서,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임을 밝히십니다. 여기서 ‘원수’는 하느님에게서 분리된 자,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버린 자를 가리키는 표현으로써 세상에 퍼져 있는 악의 기원과 그 정체성을 드러내며, ‘악마’ 또는 ‘마귀’는 하느님 앞에서 사람을 비방하는 존재,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불화를 조성하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에게서 분리된 자는 다른 이들도 하느님에게서 분리되도록 촉구하며 힘쓰는 존재, “남을 죄짓게 하는 자”와 “불의를 저지르는 자”입니다. 이들은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이며,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불구덩이’는 모든 불의한 것들이 징계 되고 일소되는 장소이며, 이곳에서 악인들은, 울부짖고 분노로 씩씩대는 사람의 모습처럼, 종말론적인 영원한 운명에 놓일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좋은 씨’와 ‘가라지’의 운명,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의인들과 “불구덩이에 던져져 울며 이를 갈” 악인들의 운명을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는 마무리 당부 말씀으로, 모든 이가 ‘가라지’의 운명을 벗어나 ‘좋은 씨’로서의 자격을 되찾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이러한 바람을 현실로 만드시기 위해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십자가상 희생제물로 바치실 것이기에, 이 바람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바람으로 머물 것입니다.

 

오늘 하루,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지력과 지혜를 청하는 가운데, ‘좋은 씨’로서의 모습으로 또는 그 모습을 되찾아,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의미 있는 하루 뒤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추수 때에 가라지를 추려내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와 밀의 비유를 통해 세상과 교회의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추수 때에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고,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40.43절) 

 

가라지의 비유에서 밀은 하느님께 충실한 의인들을, 가라지는 악과 죄를 따르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하지만 현재 이 세상에서는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우리 눈에는 누가 선인인지, 누가 악인인지 쉽게 판단되지 않는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인간의 눈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므로, 누구를 완전히 선하거나 악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하느님만이 심판하실 수 있다.”(Homiliae in Matthaeum 60 요약)라고 말한다.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 역시 이를 강조한다. 교리서는 최후 심판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완전히 드러내시고, 의인은 상을 받고 악인은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1038-1040항 참조) 

 

사람들은 종종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마태 13,28) 하고 서둘러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조급한 판단은 오히려 우리 자신을 가라지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 전체를 알 수 없으며, 순간의 행위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람은 외적 행동만 보고 심판할 수 없으며, 오직 하느님만이 인간의 내면과 의도를 완전히 아신다.”(De Civitate Dei 20 요약)라고 지적한다. 

 

오늘 복음은 남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의 마음 밭에는 어떤 씨앗이 자라고 있고, 어떤 열매가 맺히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가라지 같은 행동이나 생각을 하더라도, 하느님의 은총과 참된 회개를 통해 다시 좋은 밀알로 변화될 수 있다. 교회와 사회 안에서 “완전히 선한 사람들만 있어야 한다.”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고 돕되, 궁극적인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는 신뢰가 필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하기를 바라시기보다, 완전함을 향해 노력하는 삶을 원하신다. 매일 하느님의 뜻으로 돌아가며 살아갈 때, 우리의 마음 밭은 풍요롭게 가꾸어지고, 최후의 심판에서 의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과 교회 안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다.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 동안, 충실하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자신을 좋은 밀알로 가꾸어야 할 것이다. 남을 조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항상 겸손과 회개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는 의인이 될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밭의 가라지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마태13,36ㄴ)

 

'우리의 희망!'

 

오늘 복음(마태13,31-35)은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청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마태13,37-39)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13,41-43)

 

'우리의 희망!'

우리의 희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 구원의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우리의 그 어떠한 죄 보다도 하느님의 자비가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악에서 벗어날 시간과 기회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지혜12,19-20 참조)

 

요즘 평일에 독서로 듣고 있는 말씀은 남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에 활동했던 눈물의 예언자라고 불리는 '예레미야 예언자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어제 독서(예레13,1-11)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주님께서는 타락한 유다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악한 백성이 내 말을 듣기를 마다하고, 제 고집스러운 마음에 따라 다른 신들을 좇아 다니며 그것들을 섬기고 예배하였으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띠처럼 되고 말 것이다."(예레13,10)

 

그러자 오늘 독서(예레14,17ㄴ-22)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 이렇게 간청합니다.

"주님, 저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저희를 내쫒지 마시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옥좌를 멸시하지 마소서.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예레14,20-21)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간청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살려주십니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우리의 희망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갑시다!

우리의 희망이신 하느님의 자비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합시다!

 

(~ 지혜13,19)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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