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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7월 28일 (화)연중 제17주간 화요일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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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7월 28일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190835 박양석 [pys2848] 스크랩 2026-07-27

2026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왕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를 보고서는 불쌍하다면서 옆의 신하에게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이 왕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동물 애호가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맹자는 ‘소는 보았으나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영복 선생님께서도 이를 동물 사랑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만남의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왕은 소를 만났기에 소를 구하고 싶었던 것이고, 양을 만나지 않았기에 만나지 않은 양으로 바꾸라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만남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만남이 너무 부족합니다. 스마트폰을 통한 SNS 만남만을 원하고, 실제 대면하는 경우를 기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기중심의 만남을 요구하고 있어서, 자기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 자기 원하는 대로 해주는 사람과의 만남만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만남 자체를 피하려고 합니다.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가 섣부른 판단과 단죄를 만듭니다.

 

만남은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관계는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에서 제대로 완성됩니다. 여기에 사랑이 있습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일꾼들이 섣불리 가라지를 뽑다가 좋은 밀까지 뽑아버릴까 염려하여 이를 원치 않으셨던 밭 주인의 인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장이 끝나는 시점, 곧 가라지는 거두어져 불에 타고 좋은 씨앗의 수확물은 곳간에 모아들이게 되는 그 마지막 때를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속한 공동체나 세상에서 ‘가라지’처럼 보이는 이들을 솎아 내고 심판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밀이 될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심판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선과 악이 혼재된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인내를 배우면서 나 자신이 참된 하느님 나라의 자녀로 영글어가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 특히 나를 짜증 나게 하거나 불쾌하게 하는 이들에게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라지들과의 만남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귀한 형제자매로 여기며 인내와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선한 모범과 그들의 회심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늘 나라를 향한 올바른 길로 그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는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나도 알아.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겠지. 정답은 시도에 있는거야(영화 ‘비포 선라이즈’ 중).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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