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 불 효 교(孝不孝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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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3 김중애 [ji5321] 스크랩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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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불 효 교(孝不孝橋)
뼈대 있는 가문이라 하여
어린 나이에 시집왔더니
초가삼간에 화전밭 몇 마지기가
전 재산입니다.
정신없이 시집 살이 하는 중에도
아이는 가졌습니다.
부엌일에 농사일하랴,
길쌈 삼으랴,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되어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지 비몽 사몽 간에
일을 치른 모양입니다.
아들 여섯 낳고 시부모 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 잡았을 때
시름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덜컥 저 세상으로 가 버렸습니다.
유복자 막내아들을 낳고 유 씨 댁이
살아가기는 더 바빠졌습니다.
혼자서 아들 일곱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느질로
십여 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일곱이 쑥쑥 자랐습니다.
열여섯 큰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
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시원하게
해치우고,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습니다.
일곱 아들이 효자라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게 했습니다.
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 씨 댁은 몇 달 만에 새 사람이 됐습니다.
새까맣던 얼굴이 박꽃처럼 훤해지고
나무뿌리 같던 손이 비단결처럼 고와졌습니다.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입니다.
베개를 부둥켜안아봐도, 허벅지를
꼬집어 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 씨 댁은 바람이 났습니다.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사냥꾼과
눈이 맞았습니다.
농익은 40대 후반 유 씨 댁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의
깊은 맛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일곱 형제가 잠이 들면 유 씨 댁은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습니다.
어느 날 사경 녘에 온몸이 물에 젖은
유 씨 댁이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입니다.
일곱 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 오고
쇠다리뼈를 사다 고아 줬습니다.
며칠 후 유 씨 댁은 발의 부기가 빠지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또다시 아들 일곱이
잠든 후 집을 빠져나와 범골로 향했습니다.
유 씨 댁은 깜짝 놀랐습니다.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일곱 아들의 작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효불효교(孝不孝橋)라
불렀습니다.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리
(경상북도 사적 제457호 지정)랍니다.
일명 칠성교로 불리기도 합니다.
-옮긴 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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