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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7월 24일 (금)연중 제16주간 금요일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가톨릭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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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190761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7-23

주일 아침 성당 가는 길이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단단히 준비했습니다. 우산과 우비를 챙겨서 나갔습니다. 신발도 방수가 되는 걸로 신었습니다. 빗줄기가 점점 강해지면서 방수가 되는 신발에도 조금씩 물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피해서 걸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물이 신발에 들어왔고 이내 편하게 걸어갔습니다. 도저히 물을 피해서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산과 우비가 있어서 신발 이외에 다른 곳은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비에 젖은 신발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깨진 유리창입니다. 깨지지 않고 깨끗한 유리창에 사람들은 돌을 던지지도, 쓰레기를 버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깨진 유리창을 보면 돌을 던지기도 하고, 쓰레기를 버리기도 합니다. 이미 유리창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자포자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불가항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치 길가에 뿌려진 씨앗과 같습니다.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과 같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어쩌다 특별한 이유 없이 미사에 나가지 않았는데 그것이 습관처럼 되어서 성당에 아예 안 나가는 분을 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목적지입니다. 비록 신발에 물이 들어왔지만 성당이라는 목적지를 알았기에 물살을 헤치고 성당으로 걸어갔습니다. 목적지가 없었다면 거센 빗줄기를 보면서, 신발에 물이 들어오는 걸 느끼면서 아마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목적지가 입력되면 비록 잘못된 길을 갈지라도 내비게이션은 곧 다른 길을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밀과 가라지는 품종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깨진 유리창이 된다면 밀이었던 우리의 마음은 곧 가라지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내비게이션이 된다면 그래서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가라지였던 우리의 마음은 곧 밀이 됩니다. 우리의 삶에 언제나 꽃길만 펼쳐져 있지는 않습니다. 날씨가 변화무쌍한 것처럼, 우리의 삶에는 때로 흐린 날도, 천둥과 번개도 있기 마련입니다. 좋은 밭에 뿌려진 씨가 되기를 바라지만 때로는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에 뿌려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입니다. 먹구름 뒤에는 밝은 태양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꽃길만 걸었던 성인과 성녀는 없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꽃길만 걷지 않으셨습니다. 좋은 밭에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라는 가시덤불도 만났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군중도 있습니다. 믿었던 제자의 배반도 있었습니다. 그 길이 너무 힘들어서 세 번 넘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목적지를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강을 건너 부활의 땅으로 갈 수 있으셨습니다. 마디가 없는 대나무는 없습니다. 나이테가 없는 나무도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평탄한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고, 채찍질을 세 번 당했으며, 돌에 맞아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도시 밖에 버릴 정도의 고난도 겪었습니다. 또한 세 번이나 파선을 당했고, 하루 밤낮을 깊은 바다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으며, 때로는 거짓 형제들과 동료들의 배신으로 마음의 상처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고난을 실패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은총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중요한 것은 비에 젖은 신발이 아니었습니다. 깨진 유리창처럼 무너진 마음도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였습니다. 그 목적지는 그리스도였고, 하느님 나라였고, 복음이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 참된 목자는 양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목적지를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길이 막히고, 신발이 젖어도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꽃길만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험한 길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게 합니다. 마음이 깨졌을 때 다시 주님의 은총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마음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길가처럼 굳어졌다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돌밭처럼 뿌리가 얕다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가시덤불처럼 세상의 걱정에 눌려 있다고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문을 열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다시 좋은 땅이 되기를 기다리십니다.

 

비에 젖은 신발은 말라 버립니다. 깨진 유리창도 다시 고칠 수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도 내비게이션은 다시 길을 알려줍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잠시 흔들릴 수 있습니다. 때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지를 잃지 않으면 다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인내하며 걸어가는 사람은 마침내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이 깨진 유리창이 아니라 주님께 길을 묻는 내비게이션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라지가 아니라 밀알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을 지나 좋은 땅이 되면 좋겠습니다. 비가 와도, 신발이 젖어도, 길이 험해도 주님께서 기다리시는 목적지를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딛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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