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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7월 15일 (수)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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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

190630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10:10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 마태 11,25-27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인간은 하느님에 대해 스스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보거나 들을 수도, 만지거나 직접 경험할 수도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이성과 논리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한 없이 뛰어넘는 놀라운 방식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제 아무리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이라 해도 ‘나는 하느님에 대해 안다’고, ‘그분 뜻이 무엇인지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겁니다.

 

더구나 그 지혜와 슬기가 남들이 인정해주는 객관적인 수준이 아니라 ‘자칭’일 때, 즉 자기 스스로 자신을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주장하는 상태라면 하느님에 대해서 더더욱 알기가 어렵습니다. 속이 텅텅 비어 있으면서 아닌 척 위선을 떠는 이들이 충만함 자체이신 하느님을 제대로 알 수 있을 리가 없겠지요. 그런 이들은 자신이 하느님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오만’과, 자신이 기대하고 바라는 방식대로 하느님께서 움직이셔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강요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비난하고 단죄하지요. 예수님 시대에 율법학자나 바리사이같은 종교학자들이 그랬고, 빌라도나 헤로데 같은 권력자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그분 뜻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따르고자 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철부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철부지는 단순히 철 없는 사람, 분위기 파악 못하고 어리숙한 사람을 가리키는게 아닙니다. 단순하고 솔직하며 순수하고 겸손한 이들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기보다 주님의 권능과 자비에 의탁하는 이들입니다. 영혼에 고정관념이나 편견, 고집 같은 때가 묻지 않았기에 대상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고 자기 안에 받아들일 줄 아는 이들입니다. ‘진복팔단’에 등장하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바로 그들이지요. 그래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봅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 형제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낍니다. 그렇게 매일을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갑니다.

 

천주교는 ‘계시 종교’라고 합니다. 즉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하느님의 뜻은 그분께서 드러내 보여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드러내 보여주신다고 해도 아무나 다 알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알게 되지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분 뜻이 무엇이든, 심지어 내 기대나 바람과 정 반대일지라도 겸허하게 수용하려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과 삶 모두를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매 순간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묻고 고민하며 실천해보기를 반복하다보면, 뿌연 안개처럼 모호하게만 느껴졌던 하느님의 뜻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명확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점점 더 깊이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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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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